회계법인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세요? 대부분 CPA를 취득한 회계사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회계와 관련해서 일을 하고 싶은데, CPA 시험의 문턱은 너무 높고, 바로 실무현장에서 일을 해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자기만의 강점이 있다면, CPA 시험이 아니더라도 회계법인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도 알고 있었나요? 특히나 영어를 잘 한다면, 한국이 아닌 외국의 회계법인에 취업이 가능합니다. CPA 자격증 없이 세계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EY에 취업한 김기호 씨를 연세웹진에서 만났습니다.
▲ 4대 회계법인
Q. EY란 어떤 회사인가요?
세계 4대 회계법인에는▲ Deloitte, ▲ PwC, ▲ KPMG, ▲ EY가 있어요. 이 회계법인은 한국 4대 회계법인과도 관련 있습니다. ▲ 삼일은 PwC, ▲ 삼정은 KPMG, ▲ 안진은 Deloitte, ▲ 한영은 EY 이렇게 말이죠. 각 회사들은 자신들만의 강점을 가지고 있어요. EY는 그 중에서도 '회계감사'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해요. EY는 전 세계 곳곳에 자회사를 두고 있습니다. 네트워크가 전 세계적이기 때문에 파급력 또한 어마어마하죠. EY는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고, 세계의 회계 시장을 이끌고 있는 4개 회사 중 1개예요.
▲ 이전가격
Q.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제가 속해있는 팀은 관세 팀이에요. 이전가격 팀이라고도 불리죠. 말 그대로 관세에 대한 일을 다뤄요. 수입과 수출에 관련된 법과 회계업무가 주된 업무죠. 특히 이전가격에 대한 업무가 흥미로운데요.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모회사와 여러 종류의 자회사를 가지고 있어요.
당연히 글로벌 기업의 입장에서는 모회사의 물건을 자회사에 싸게 공급해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겠죠? 가령 예를 들면 A라는 물건이 있을 때, 다른 회사들에게는 500원에 공급하는 물건을, 자회사에는 300원에 공급하는 거예요. 그러면 당연히 200원 만큼의 순수익이 더 발생하겠죠.
하지만 국세청에서는 이를 공정거래위반법으로 문제 삼아요. 저희 관세팀이 하는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것을 최대한 조율해서 합법적으로 만드는 일이에요. 회계 일과 법적인 부분의 경계를 넘나드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단지 경제학적 개념이 아니라, 법적인 이해가 필요하답니다. 최근에는 법 공부도 하고 있어요.
Q. CPA와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한국의 회계법인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회계사인 건 아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라고 보시면 돼요. 다만 일이 외국계 회사를 상대하는 일에 맞춰져 있어요. 업무에서 통역과 번역이 들어가는 것만 빼면, 회계사의 업무랑 비슷해요. 단지 영어로 그 일을 처리할 뿐인 거죠.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사실 연봉인 거 같아요. 자격증이 없기 때문에 연봉 부분에서는 적게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Q. EY만의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수평적인 관계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호간의 존칭은 “선생님”으로 모두 통일 해요. 심지어 대표님조차도 저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른답니다. 업무에 있어서도 자율성이 있고, 야근이라는 개념이 없고, 복지도 좋은 편입니다. 또 다양한 기업들이 운영되는 구조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제 소속은 EY이지만, 다른 일반 회사를 상대로 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업들의 특성을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세상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진 거 같아요.
하지만, 그만큼 부담감도 큰 편이에요. 한국 회사의 신입사원이라면 부수적인 일을 하고, 어깨 너머로 일을 배우기 시작할 텐데, 저는 입사하자마자 바로 실무현장으로 투입됐어요. 그래서 실수도 많이 했지만, 오히려 제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킬 수 있었던 좋은 기회인 거 같아요.
Q. 취업까지의 학창시절은 어떠했나요?
저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 사업 때문에 여기저기를 많이 떠돌아다녔어요. 한국에 살다가 인도네시아에서 5년 정도 살았고, 필리핀으로 이사해서 국제학교에 다녔어요. 또 대학은 호주의 멜버른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외교학을 복수 전공했습니다. 네스프레소라는 작은 회계법인에서 인턴을 했고, EDM에 관심이 많아서 크고 작은 행사들의 스텝으로 활동했어요.
Q. 취업하실 때 고충이 있으셨나요?
사실 학벌이나 스펙 부분에서는 굉장히 자신 있었어요. 국제 학교를 나왔고, 멜버른 대학교를 졸업했으니까요. 크고 작은 인턴과 대외활동도 착실하게 했거든요. 그런데 입사 지원서를 썼는데, 우후죽순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때 회의감을 느꼈어요. 도대체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이것저것 많은 대외활동을 했지만,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잘 몰랐던 거죠. 아직도 회계 쪽 일이 저한테 맞다고 확신은 못하겠어요. 하지만 실무현장에서 발로 뛰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단지 일이 아닌 인생을 배워가는 기분이에요. 이쪽 계통은 3개 국어 이상하는 사람들도 많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인지 일을 하면서도 많은 자극이 돼요.
Q. 회사에 다니시면서 힘들었던 일도 있으신가요?
회사에 들어왔는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는 일이 많았어요. 통역이나 번역을 하는 일도 많았죠. 평소 한국어와 영어 모두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문용어가 들어가다보니, 혼란이 오더라구요. 저는 한국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하고, 뭐하는 사람인가. 회의감까지 들었어요. (웃음) 참 많이 혼나서 처음에는 주눅 들어 있었던 게 생각나네요. 지금은 업무가 익숙해져 한국어, 영어 모든 언어로 일처리를 능숙하게 할 수 있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어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려고 해요. 한국의 회계사 시험이 아니라, 외국 회계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자격증이기 때문에,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제 장점을 내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쪽 일을 계속한다면 회계사 자격증의 유무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실무와 공부를 겸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네요. 또한 법 공부도 같이 할 예정이에요. 이전가격 팀의 특성상 법에 대한 이해도가 업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영어에 자신 있지만, 일반 회화적인 부분과 법적인 용어를 영어로 이해하는 건 다르니까 말이죠.
지금까지 회계법인에 들어가려면 CPA를 따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의 장점이 있다면, CPA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특히나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잘 한다면 어느 회사를 가더라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여러분들도 진로와 취업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시겠지만, 현실의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하면 분명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또, 최근에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깨지면서, 취업을 하고 나서도 업무에 관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