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준 건축가 프로필
학우 여러분은 공간구조가 인간의 생활방식과 치안,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여기 건축 양식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얘기하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지난 11월 27일, 연세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 유현준 건축가의 멘토링 특강이 있었습니다. 유현준 건축가는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이자 홍익대학교 부교수입니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건축설계 석사 학위가 있으며, 2017년 Chicago Athenaeum Award 수상과 Arcasia Awards for Architecture 아시아 건축사협회 건축상을 받은 이력이 있는 건축 분야의 스펙도 뛰어납니다. 최근 tvN 프로그램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와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대중에게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런 건축가가 학우들을 위해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세웹진에서 취재했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만큼 많은 학우분들이 강연에 참석했습니다.
▲ 유현준 건축가
▲ 특강 모습
▲ 특강을 듣고있는 학우들
어떤 거리는 왜 더 걷고 싶을까?
우리가 데이트 코스를 정할 때 서울 테헤란로 걷자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 명동, ▲ 신사동 거리, ▲ 홍대 피카소 거리를 더 선호합니다. 저는 가게 입구가 행동을 바꿀 것으로 생각하는데, 가게 입구가 하나 있으면 이벤트 개수가 두 개 생기는 것에서 근거를 들 수 있죠. 이러한 이치로 가게 입구 n개가 더 생기면 이벤트 개수가 2의 n승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홍대 앞에서 13년째 점심을 먹는데, 다른 식당에 들어가면 다른 거리가 되는 효과를 느낍니다. 즉, 이벤트 개수가 많을수록 계속해서 거리에 대한 느낌이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이 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홍대 앞 피카소 거리를 조사해 본 결과, 1층 가게 16개, 2층으로 올라가는 가게는 14개였습니다. 120m 공간에 20개라는 선택의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심지어 가운데는 차가 지나가는 길이 아니고 주차장이라서 사람들이 그사이를 걸어갈 수 있는 장점도 있죠. 다른 곳도 조사해본 결과, 명동은 36개, 강남대로는 14개였고, 테헤란로는 가장 적은 8개였습니다. 이곳은 대부분 빌딩이 변호사, 사업 사무소 같은 곳이어서 경비아저씨의 거부로 못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신사동 가로수 길은 36개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걷고 싶은 거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벤트 밀도가 30개 이상일 경우였습니다.
이는 TV 채널 개수에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데요. 퇴근한 후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채널 숫자가 많긴 하지만 볼 게 없어서 계속 채널을 돌립니다. 그렇게 TV를 돌려 보다가 어느 정도 보면 재밌는 프로그램을 발견하는 경험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홍대 앞거리를 걸을 때 ▲ 냉면 가게, ▲ 아이스크림 가게, ▲ 속옷 가게 등이 계속 나오는 것이 ▲ 먹는 방송 프로그램, ▲ 드라마, ▲ 스포츠 채널 등이 계속 나오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로 사람들이 걷고 싶어 하는 거리는 이벤트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세종로를 보면 지하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와 정부종합청사까지 거리가 300m가 넘는데 인구는 한두 명 뿐입니다. 거리는 엄청나고 국군의 날 행사하기는 좋은데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광장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죠. 또 하나의 문제는 이곳이 6차선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발견한 또 하나의 법칙은 4차선의 법칙입니다. 4차선이 넘어가면 사람들이 건너가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이에 대한 예시로 또 홍대를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홍대 앞 상점은 많이 찾지만, 메세나폴리스는 잘 가지 않습니다. 이유는 10차선이기 때문인데요. 그런 관점에서 세종로를 보면 이벤트 밀도를 높이고 차선이 좁아야 사람들이 건너가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로의 폭이 좁아야 하는 이유는 무단횡단의 가능성 때문이에요. 3차선 정도는 사람들이 눈치 봐서 넘어가는데 4차선 정도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죠. 이벤트 밀도가 많을수록 더 걷고 싶게 만듭니다. 즉, 보행 친화적이고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는 도시를 만들려면 사람이 많이 걷게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어디인가?
제 생각에 서울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은 한강공원입니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굉장히 좋은 도심 속 공원이라 많은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곳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자연 속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너무 깜깜하고 정말 살벌합니다. 이는 전체 공원의 86%가 사각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즉, 도로의 폭이 넓어서 가운데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보스턴 커먼이라는 공간은 치수가 아주 작아서 주변 빌딩들이 보입니다. 그래서 밤에 가도 주변 빌딩에서 사람들이 다 감시를 하고 있기에 안전합니다. 한강공원도 주변 아파트단지에서 계속 쳐다보고 있어서 안전합니다. 늘 불빛이 있기 때문에 그 공간은 안전할 수밖에 없죠.
‘감시를 당하면 안전해진다.’는 개념에서 착안해 서울이나 원주 등 우리나라의 도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 운동장은 축구장 하나 들어갈 정도의 치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걸어서 아이들이 나갈 수 있습니다. 근데 그 공간을 나라에서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교 수업시간이 아니고 운동장을 쓰는 시민은 조기축구회 밖에 없습니다. 방과 후가 되면 아무도 안 쓰는 공간이 됩니다.
10년 전쯤에 학교 담장 허물기 운동이 있었습니다. 근데 아이들이 유괴당해서 담장 다시 돌려쓰고 보안관까지 두게 됐습니다. 반면 유럽의 광장은 왜 밤낮으로 잘 쓰냐고 묻는다면 주변에 가게가 잘 배치돼 있기 때문입니다. 가운데 광장에서는 누가 날 계속 쳐다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튼짓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학교를 가운데에 배치해 놓고 운동장을 놓은 다음 주변에 ▲ 분식집, ▲ 문방구, ▲ 카페 등을 놓으면 감시 효과가 일어날 수 있고, 그 운동장은 안전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방과 후에는 퇴근 이후 쓸 수 있는 광장 같은 곳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학교 주변 200m 이내에 상업시설을 두면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다. 이는 공간이 있는 데도 잘 못 쓰는 케이스에 속합니다.
▲ 판옵티콘
부장님은 왜 창을 등지고 앉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내 모니터를 다른 사람이 못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판옵티콘은 공리주의자가 만든 감옥입니다. 공리주의자란 한 명의 목숨을 버려서 천명을 살릴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즉, 최소한 희생으로 최대 성과를 내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공리주의자가 감옥을 만든다면 최소 감시로 최대 죄수를 감시할 수 있게 만들 것입니다. 여기서 감수의 방은 창문이 작아서 죄수들이 감수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누가 잘못하면 끌어다 내놓고 때려서 죄수들이 ‘감수가 나를 항상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조심하게 되는거죠. 문제는 감수가 감독하는 공간은 나선형 계단으로 돼있는데 이 계단으로 감수가 퇴근해도 죄수는 감수가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이는 감수가 죄수를 감시하는 게 아니고 공간구조 자체가 죄수를 감시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비슷한 예로 아파트에서 산다면 한 층이라도 더 높은 층에 있을수록 권력을 가집니다. 나를 노출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자리 배치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를 항상 누군가 볼 수 있게 된 상황은 권력을 빼앗기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사장님이 CCTV를 통해 언제 볼지 모르니까 권력을 빼앗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보면 부장님은 창을 등지고 앉고 동급 사원들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클럽 입구에 줄을 걸어놓은 이유는?
클럽 입구를 보면 항상 줄을 걸어놓고 한 사람이 앞에 서 있어서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이는 또 다른 권력의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위치가 한층 높을 때마다 권력이 많아서 펜트하우스가 가장 비싼데, 옥탑방은 가장 쌉니다. 왜냐하면, 옥탑방은 아무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가 한때 옥탑방에서 살았는데 물건을 계속 도둑맞았습니다. 이는 도둑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무나 갈 수 있는 공간은 권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반면 펜트하우스는 들어가려면 보안 3번을 거쳐야 합니다. 펜트하우스에 사는 친구 집에 갈 때마다 ‘정말 만나기 힘든 사람을 만나러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클럽 앞에 줄을 걸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아무나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러면 클럽 안의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이러한 권력의 속성은 사회생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요. 회사 회장님 방들은 항상 비서실을 거쳐 들어가게 돼있습니다. 일부러 관문 같은 장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고위직의 사람들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안 적혀있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너는 나에게 직접 연락할 권위가 아니다.’하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반면 일명 나이트 호객꾼은 연락처를 바닥에 뿌리고 다닙니다.
현대인은 왜 TV를 많이 보는가?
이는 건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살았습니다. 마당은 항상 변화가 있어요. 계절마다 모습이 바뀌고 하루에도 시시각각으로 조명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정오와 해 질 녘의 마당 모습이 다 다릅니다. 이처럼 마당이라는 공간 하나에서 여러 변화가 생깁니다. 아파트 같은 경우 마당을 실내공간으로 만든 게 거실입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거실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방에서 다했는데 이러한 마당이 거실로 바뀌고 텔레비전을 보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근데 인테리어 측면으로 봤을 때 마당은 계속해서 바뀌는 거라고 하면 거실은 항상 똑같습니다. 퇴근하고 가면 똑같은 벽지에 똑같은 조명입니다. 형광등 불빛이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고 공간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유일하게 변화 찾을 수 있는 곳이 텔레비전 속입니다. 인간은 계속 변화 추구하고 그것이 우리를 활동하게 만들기 때문에. 현대인은 TV를 점점 더 많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서울에는 왜 카페가 많은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커피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사적인 외부 공간이 부족해서 때문입니다. 요즘 1인 가구 증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죠. 그러면서 큰 평수의 아파트 가격은 계속 내려가고 작은 평수의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방이 3개인 아파트 같은 경우 각자 방 하나씩 쓰지만 가운데 거실이나 부엌과 같은 공용공간은 같이 씁니다. 합쳐서 1인당 19평 정도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근데 원룸에 살게 되면 8평, 실 평수는 6평도 안 됩니다. 이 안에 침실과 거실, 부엌 등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실제로 4명이 같이 쓸 때보다 한 명이 혼자 쓸 때 공간이 더 줄어드는 것입니다. 방에서 혼자 갇혀있기 때문에 친구들은 sns로 만납니다. 옛날에는 마당까지 넓은 공간에서 살다가 현대에 와서 더 좁은 공간을 쳐다보고 살게 된 것입니다.
건축적 측면으로 보면 고시원 같은 모습은 교도소와 비슷한 조건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걸 깨기 위해서 최근에는 셰어하우스 같은 것이 나오고 있습니다.
맨해튼도 좁은 공간에서 사는 것은 우리나라와 똑같은 상황입니다. 근데 뉴욕과 서울의 다른 점은 뉴욕은 센트럴파크가 있고 얼마 안 가 타임스퀘어가 있고 공원들이 쭉 분포가 돼있습니다. 그래서 10km 이내에 10개의 공원 있고 금방금방 갈 수 있습니다. 반면 서울은 한 시간 걸어가야 다른 공원이 나옵니다. 공원이 15km 내에 9개 있는데 공원 간 평균 거리가 4km, 걸어 가는 대는 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보행 친화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맨해튼 같은 경우는 공적인 것을 공유할 공간이 많습니다. 반면 서울 사람들은 1시간 이상을 걸어야 다른 공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는 자동차 타고 가라는 것인데 공원 주변 주차장도 별로 없습니다. 어찌 보면 도시 공간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앉아서 쉴 수 있는 카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다른 도시나 나라에 비해 여러 가지 ‘방’이 발달한 것 같아요. ▲ 노래방, ▲ 멀티방, ▲ 비디오방, ▲ 모텔 대실 등 단기간 렌트 사업 발달해 있습니다. 그래서 커피숍은 커피문화가 발달했다기보다도 5000원을 내고서 세 시간 정도 거실을 빌려 쓰는 것과 똑같은 개념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대부분은 대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하거나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창업이나 이런 것보다는 왜 대기업, 공무원 이런 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현대사회 가장 큰 문제점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이에 SNS도 큰 역할을 합니다. 옛날에는 친구들이 직접 모여 얘기하며 생각들이 서로 교류되면서 조금씩 바뀌어 나갔습니다. 근데 요즘은 페이스북 '좋아요'를 누른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친구를 합니다. 취미도 비슷한 애들끼리만 모여서 자기들끼리 그룹에서 갈라파고스 군도처럼 모여서 끼리끼리 노는 문화입니다. 즉, 생각이 바뀌지를 않는 것입니다.
▲ 교도소와 학교의 유사한 모습
저는 이 현상의 문제점이 ‘학교건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학교건축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설립된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로는 ▲ 전화기, ▲ 비행기, ▲ 자동차 등이 있는데 지금 학교 빼고는 형태가 다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어르신 분들은 예전 학창시절에 학교 방과 후에 마당이나 골목에서 뛰어놀았는데 지금 대부분의 학생은 아파트에서 삽니다. 즉, 자연을 접할 수가 없는 환경입니다.
교실면적을 보면 40년간 7배가 늘어났습니다. ▲ 특별활동실, ▲ 강당, ▲ 식당, ▲ 실내면적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는 점점 고층화 됩니다. 운동장 하나에 고층 짜리 건물 하나인 모습은 교도소와 다를 게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유일하게 담장에 둘러싸여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게 학교와 교도소입니다. 우리는 모두 12년 정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것입니다. 이러면 정상적인 생활이 나올 수 없습니다. 왕따, 폭력과 같은 요즘 학교에서 문제 되는 현상들이 교도소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똑같습니다.
판옵티콘을 보면 공간구조가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미칩니다. 같은 이치로 우리는 학교라는 억압된 공간에서 12년을 살았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학교 고층화의 부작용
점점 고층화되면 생기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50분을 수업하고 10분 쉬는데 쉬는 시간 동안에 4층에서 뛰어 내려가서 운동장 놀다가 올라갈 학생은 없습니다. 그래서 밖에 안 나가고 실내에만 12년 동안 있는 것입니다. 저층화가 돼야지만 마당에 자주 나갈 수 있는데 고층화가 되는 게 문제입니다.
또 큰 문제는 운동장을 축구 경기를 하는 아이들이 다 쓴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여학생들과 얌전한 남학생들은 여러 가지 운동장에서 하고 싶은 거 많은데 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12년을 살면 정상적인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학교가 고층화될수록 교우관계가 깨질 수밖에 없고 사회성 이상하게 된다는 실질적인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 유현준 건축가 강연모습
윈스터 처칠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이는 제 강연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사람을 다시 만든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할 것 같고, 큰 기업에 취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은 결국 공간구조가 만드는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공간구조를 바꾸면 다음 세대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이 끝난 뒤, 약 30분 간의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다양한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을 뽑아봤습니다.
Q. 현대건축에 관심이 많은데, 한국의 전통 건축과 현대 건축 양식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A. 한국전통건축과 현대건축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 당시에구할 수 있는 재료가 나무, 기와 밖에 없었고 건축자재를 옮길 수 있는 것이 소달구지밖에 없어서 자연적 제약, 물류 제약 등으로 인해 한옥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국 전통건축을 보면 조선시대 건축에서 2층 주거형태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난방방식이 온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시대가 바뀌고 재료와 기술이 다 바뀌었는데 왜 지금 한옥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만약 한국 전통이 중요하다고 해서 한복만 입고 출근하라고 하면 말이 안 되듯, 전 국민이 한옥을 지으면 대한민국에 농사지을 땅이 하나도 남지 않죠. 그러므로 이 시대에 맞는 해결책이 아닙니다.
저는 다양한 아파트 형태가 나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마당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아파트를 건설하면 마당이 없어지기는 하지만 테라스 등으로 보완하면 되므로 전통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그 시대 제약과 조건에 맞는 답일 뿐,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 제약과 조건에 맞는 건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알쓸신잡 2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A.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제가 그 전에 어쩌다 어른에 나갔는데 그걸 보시고 전화한 것인지, 그 전부터 생각했다고 얘기는 하시지만요. 작가들끼리 회의를 한대요. 방송 출연은 어느 날 갑자기 전화 받으면 하는 거에요.
▲학우의 질문에 답하는 건축가 유현준
사실 건축 분야에 관심 없고 건축과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건축가의 강연을 취재하러 가기 전 '강연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장소의 법칙, 건물을 높게 짓는 이유 등 일상 속의 건축을 테마로 특강을 진행해 더 쉽고 흥미롭게 특강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기업 취직을 선호하는 성향 또한 건축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신선한 내용이었습니다. 강연을 들은 뒤, 마냥 따분하고 딱딱할 줄만 알았던 건축이 재미있고, 우리 생활과 매우 밀접하며 우리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한, 보다 많은 사람이 유현준 건축가의 학교 구조에 관한 견해를 듣고,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교육부에 학교 건축구조 개편을 요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전공수업을 주로 듣다 보니 전공에 관련된 지식만 습득하는 데 그쳤는데 이렇게 다른 분야의 상식을 쌓을 수 있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