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편집자는 책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진다. 다른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배우는 물론이고 연출과 감독, 제작자들도 작품의 제작 배경이나 과정, 메시지 등에 대해 인터뷰를 한다. … 하지만 책의 세계에서는 저자만 무대에 설 뿐, 편집자는 자신의 역할을 드러내지 않고 저자의 뒤에 숨게 된다. - 김학원, 「편집자란 무엇인가」 中
책을 처음부터 마무리까지 연출하는 직업, ‘북에디터(이하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지만, 편집자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죠. 그러나 ‘편집자는 최초의 독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자가 독자와 만나기 전에 꼭 편집자를 거친다는 뜻인 만큼 편집자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자의 글을 먼저 읽고 다듬어 독자에게 선보이는 일은 책을 좋아한다면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 수 없는데요. 현재 신입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정 동문(07·철학)의 생생한 이야기를 연세웹진에서 소개합니다.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
편집자는 주요 업무와 기능에 따라 크게 ▲ 기획 편집자, ▲ 개발 편집자, ▲ 본문 편집자로 나뉜다고 합니다. 기획 편집자는 저자와 출판사에 신간 기획을 제안하고, 이를 원고로 발전시키는 일을 합니다. 개발 편집자는 저자의 집필 과정에 협조하며 원고의 수준을 높이는 일을 합니다. 교과서, 참고서 등을 다루는 출판사에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편집자는 원고의 문법이나 어법, 사실관계 등을 수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밖에도 문장을 매끄럽게 만드는 윤문 편집자, 규모가 큰 출판사에서 관리를 담당하는 관리 편집자 등이 있습니다.
편집자가 걷는 길
편집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입사하면 먼저 수습 편집자가 돼 출판사의 잡무를 익히게 됩니다. 대략 1~3년이 지나면 본격적인 편집자의 세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주로 신간의 기획과 개발, 본문 편집을 (편집장의 지휘하에) 담당하게 되죠. 대개 3~5년의 경력을 쌓으면 책임 편집자가 됩니다. 5~7년 정도의 편집자 경력이 되면 전문 편집자가 돼 편집장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프리랜서로 활동하거나 1인 출판사를 세울지 결정하게 됩니다.
(참고자료 - 「편집자란 무엇인가」, 김학원 지음, 휴머니스트, 2009)
이현정 동문은 단행본과 교과서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있었다고 하는데요. 입사 후 1년간 단행본 본문 편집을 배우고, 2년 차에 곧바로 교과서 책임 편집을 맡게 되었다고 합니다.
Q. 처음에 편집 분야를 선택하실 땐 계기가 있으셨나요?
“저는 원래 단행본 기획을 배우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교과서 개발을 한대요. 그래서 갑자기 교과서를 만들었어요!(웃음) 저는 철학과였기 때문에 도덕 교과서를 했어요. 전공이 철학이니까 정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회사가 특이한 경우여서 저에게 책임 편집을 맡겼어요. 저자 섭외부터 마무리까지 다 했어요. 보통 2, 3년 차한테 그런 일 잘 안 시키거든요. 저는 거꾸로 배운 케이스에요.”
Q. 그러면 기획으로 갈지 개발로 갈지 정해야 하나요?
“네, 정해야 해요. 교과서 개발에 1, 2년 있으면 단행본 기획으로 빠져나가기 어려워요. 왜냐하면, 두 가지 분야에서 요구하는 감각이 서로 달라요. 먼저 단행본 기획은 트렌드를 읽고 책이 잘 팔릴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감각이 필요해요. 그리고 교과서 개발은 정해진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을 만족시키면서도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교과서를 펴내는 것이 중요해요. 한 분야에 머물다보면 그 분야의 감각에 익숙해지기 때문에 다른 분야로 넘어가기 힘든거죠."
편집자가 되면 주로 하는 두 가지 일
“먼저 세밀하게 하는 일은 본문 편집이에요. 교정·교열이라고 하는데, 책에 들어갈 문장이 주술 구조가 안 맞는 경우가 있어요. 문장에 주어가 없거나, 혹은 주어가 있는데 서술어가 안 맞거나... 이런 걸 비문이라고 해요. 그리고 철학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문장인데... 일본어식 표현이라고 하죠. ‘~에 관한’, ‘~에 대한’ 등 이런 표현을 모두 우리말답게 교정해요.
세밀하게는 이런 걸 배우고, 크게는... 만약에 원고가 딱 왔어요. 원고의 상태를 보고 ‘이 원고는 어디가 강점이고, 어디가 약점인지’를 파악해야 해요. 이 글의 장점을 찾아서 교정 방향을 정하는 거죠. 그리고 어떨 때는 어미가 ‘~습니다’라고 쓰고, 어떨 때는 ‘~했다’ 해요. 이때 편집자는 어미를 하나로 정해야 해요. 책에 통일성이 있어야 하니까요.
또, 책이라는 게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가 쫙 들어가 있기도 하고, 사진이 들어갈 때도 있잖아요? 그럼 이제 사진도 편집자가 다 구해요. 박물관, 미술관에 일일이 전화해서 소정의 돈을 지급하고 구하는 거예요. 문학 작품에는 저작권자에게 연락해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우리 책에 싣겠습니다’하고 허락을 받는 거예요. 저는 1년 동안 이런 걸 배웠어요.”
▲ 흔한 역사 교과서 교정지.jpg
Q. 책을 만들 때 자신만의 원칙이 있나요?
“저는 책을 만들 때 한 가지 원칙이 있어요. 교정할 원고를 받으면 주변에서 별소리가 다 나와요. ‘안 팔린다’, ‘ 별로다’ 이런 얘기들이 많아요. 아니면 ‘대박 날 것 같다’ 하는 과도한 기대를 해요. 그런데 저는 본문 편집을 할 때 항상 원고의 장점부터 찾았어요. 저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시선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원고의 단점은 조금 덜어놓고 강점을 더 강화하는 쪽으로 편집 방향을 정하는 거예요. 어떤 원고든 특별하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어요. 선생님(저자)들이 쓴 것을 보면 눈물 날 때도 잦았어요. 정말 학생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게 느껴졌거든요. 편집자의 역할은 최대한 그런 걸 부각하고 단점은 보완하는 거죠.
그래서 편집자는 언제나 저자를 존중해야 해요. 저는 ‘이 책은 안 돼’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책이 이상하게 나오거든요. 원고에 마음을 줘야 해요. 원고에 애정을 가지고 원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언제나 고민해요.”
왜 편집자가 되었나
“저는 약간 고지식한 면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에서 배운 것만 되풀이해서 얘기할 줄 알지 내 주관이 분명하지 않았어요. 한 마디로 ‘의견이 없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철학과에 가게 됐어요. 왜냐하면, 철학은 한 가지를 여러 각도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학문이니까요. 예를 들면, 철학자들이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데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잖아요. 전 그런 감각을 배우고 싶었어요. 그리고 철학과를 졸업하고 나서도 그 감각을 잃기 싫었죠.
그러다가 책에 눈길이 갔어요.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책의 저자가 사회학자라면 사회학적으로, 심리학자라면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잖아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면 그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석사 논문과 서울출판예비학교
“출판사가 요구하는 역량이 있어요. 신선하고 젊은 아이디어, 그리고 경험. 만약에 대학생이라면 학부생 때 뭘 했나. 그런 경험을 보는 거죠. 저는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논문을 썼어요. 글을 다루고 다른 사람의 글도 다듬고 평가해줬어요. 출판사에서는 교정을 해봤고 글을 많이 다뤄봤으니까 출판사에서는 (석사 과정을)좋은 경험으로 봐줬죠.
두 번째로는 서울출판예비학교(sbi)에서 두 달 정도 일주일에 한두 번 강좌(일반과정)를 들었어요. 만약 신규인력양성과정에 들어가려면 독서이력서, 자기소개서 등을 내고 경쟁하면 돼요. 신규인력양성과정을 수료하면 출판사에서 면접을 볼 수 있게 다리를 놔줘요. 그래서 일반과정과 신규인력양성과정, 둘 중에 하나를 들을 수 있어요.”
(서울출판예비학교 - http://www.sbic.or.kr)
편집자는 멀티 콘센트
“출판사에 입사하려면 ‘이런 경험을 통해 편집에 필요한 역량을 길렀다’는 걸 어필해야 해요. 먼저 편집자는 여러 명이 협업하니까 사고가 유연해야 해요. 조정자의 역할을 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판에 활짝 열려있어야 해요. 그런 점에서 철학과가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맨날 비판하는 훈련을 하니까요.
그리고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종합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책은 한 권이니 한가지 콘셉트로 연출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어떨 때는 내 의견으로 사람들을 끌어가야 할 때도 있어요. ‘이 책은 이런 장점이 있고, 이렇게 하면 영업에는 이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런식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해요... 너무 어렵나? 쉽게 생각하면 멀티 콘센트랑 같아요. 내가 콘센트이고 저자, 영업자, 디자이너... 다 꽂혀있어요. 잘못되면 합선되는 거예요.(웃음)
책에 있어서는 연출해야 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조정해야 해요.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편집자가 제목을 제출했는데 사장님이 원하는 제목과 달랐어요. 그래서 (의견이 서로 안 맞아서)저자에게 가져갔더니 정작 저자는 다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거예요. 결국, 다시 조정해야 했죠. 항상 중간에 걸쳐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독자랑도 걸쳐있다는 걸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해요. (Q. 그중에서도 우선순위가 있나요?) 최우선 순위는 독자예요. 책이 잘 팔릴 수 있게 독자의 성향에 맞게 만들어지도록 설득해야죠.”
▲ 현재 출간된 리베르스쿨의 도서
트렌드를 이끄는 사람을 원한다
“트렌드를 만드는 회사가 있고, 트렌드가 있으면 거기에 맞추는 회사가 있어요. (단행본을 만드는)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은 트렌드를 만드는 기획 편집자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미움받을 용기’, 그 책이 히트하고 나서 비슷한 책이 엄청나게 쏟아졌어요. 컬러링 북, 이것도 정말 많이 따라서 냈어요.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10년 차, 15년 차 전문가들이지만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해요. 그래서 신입 편집자는 이 시대의 화두가 뭔지, 미움받을 용기가 왜 흥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해요.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예민한 사람, 그런 사람을 편집자로 원해요. 취향을 저격하는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젊고 신선한 감각을 원하죠.”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이현정 동문은 기자에게 지금 어떤 고민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철학과 심리학, 두 가지 분야 중 어떤 분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는데요. 자신이 먼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좋아하는 게 뭔지 확실하게 알고 나면 어떤 분야, 직업을 선택할지에 대한 고민이 해소될 것이라고 이현정 동문은 조언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좀 더 구체화를 하면 ‘아, 이걸 철학에서 할 수 있겠다, 아니면 심리학에서 할 수 있겠다’ 이런 게 정해질 것 같아요. 특정한 일이 꼭 아니어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철학과로 바로 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직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만약에 뭘 하고 싶은지 불분명했다면 결정을 못 내렸을 거예요.
더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기자에게)필요해 보여요. 몇 개월이 걸릴지 몇 년이 될지 몰라요. 제가 철학과 나와서 제일 걱정한 게 뭔지 아세요? 철학과에서 실용적인 걸 안 배우잖아요! ‘내 능력을 돈 주고 사는 회사는 어디지?’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출판사는 될 것 같더라고요. 왜냐면 글을 다루죠, 대학원 석사까지 했으니까 분석·판단하는 능력도 있죠. 그래서 편집자라는 직업을 탐색해보려고 서울출판예비학교를 다녔어요. 다행히 강사 선생님으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고, 출판사에 이력서를 냈죠.”
편집자의 세계로 뛰어들기 전에...
“사실 ’철학’ 하면 직접 연계되는 직업이 잘 안 떠오르잖아요. 근데 철학과를 다님으로써 배울 수 있는 역량들이 있어요. ▲ 분석, ▲ 정리, ▲ 열린 태도, 그리고 ▲ 일종의 화술도 배울 수 있죠.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고 설명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니까 어디를 가서든 잘 적응을 할 수 있어요. 그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직업 탐색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편집자는 큰돈을 벌기 어려워요. 하지만 이 직업을 통해서 활력을 얻고 의미가 있다면 선택해도 좋을 것 같아요. 자기가 기획한 책이 잘 팔리면 연봉 협상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출판은 편집자의 개인적인 능력이 굉장히 중요한 분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지가 중요해요. ‘나는 돈이 좀 박봉이어도 책을 만드는 게 좋다’라고 생각하면 이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요. 다만 뛰어들기 전에 레드오션인 건 알았으면 좋겠어요.”
글보다 이미지에 익숙하고, 영상 매체를 선호하는 시대에 종이책 시장은 망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책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이현정 동문은 말하는데요. 정보가 넘쳐흐르는 세상에서 책을 읽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고, 많은 정보를 탁월한 시선으로 풀어낸 책은 엄청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이 책을 좋아하고 글에 관심이 있다면 편집자의 길은 어떠세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그것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에 동기부여를 받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