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증을 비롯하여 평소에 사용하시는 카드가 다들 하나 이상씩은 있으실 텐데요. 눈길을 끄는 디자인으로서 카드의 이미지를 쉽게 전달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현대카드 그래픽 디자이너, 이건용 (13·시디) 동문을 만나봤습니다.
먼저 본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세대학교 시각디자인학을 전공한 13학번 이건용입니다. 졸업 후 브랜드 에이전시(brand agency)에서 브랜딩(branding) 업무를 하다가 현재는 현대카드에서 그래픽 디자이너(graphic designer)로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본인만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 같은 세상에 원칙을 갖는다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갖게 되는 순간 족쇄가 되어 유연한 사고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 분명 취향은 존재할 수 있으나 스타일에 원칙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봐요.
교내외 활동으로 참여했던 활동과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무엇인가요?
교외 활동으로는 3학년을 마치고 휴학해 작은 회사에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공유 오피스 사업을 하는 회사였는데, 입주사들을 위한 ▲ 내부 콘텐츠, ▲ 창업에 도움이 되는 온라인 콘텐츠 디자인, ▲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는 사이니지, ▲ 신사업을 위한 브랜딩 등 다양한 인하우스 업무들을 했어요. 데이터 발주나 커뮤니케이션 등 작지만 실무 디자이너로서 기본기를 익힐 수 있었던 소중한 활동이었어요.
교내 활동으로는 4학년 때 ‘실무사례연구’라는 수업에서 다양한 필드 디자이너들의 특강을 통해 좋은 디자인 사례들을 접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대학생활 중 공모전 참여 경험이 있으신가요?
따로 없었습니다. 광고 업계를 꿈꾸지 않는 이상 공모전 활동이 디자이너 커리어에 크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공모전을 통해 포토샵 실력을 키울 수 있다면 도전해 봐도 좋을 듯합니다.
졸업 전, 실무 경험(인턴, 외주)을 해보는 것을 추천하시나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해보시는 걸 추천해요. 덧붙여 인턴보다는 외주 경험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디자인은 무엇보다도 실천하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물론 학교에서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일이라도 실무를 통해 ‘내 디자인이 어떻게 돈이 되는지’를 아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 부딪혀 가면서 ‘팔리는 디자인’에 대한 감각을 키워보시기 바라요. 단, 학교 전공 커리큘럼을 놓치지 마세요. 인턴 등의 활동으로 졸업 시기를 과도하게 늦추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졸업을 빨리할수록 기회는 더 많아지니까요.
교내, 교외 활동이 진로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대학을 다닐 때는 ‘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등 방황을 하는 순간이 많아요. 저는 가만히 있으면 점점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식해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항상 쫓기듯이 행동했어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개인적인 디자인 작업과 실무 경험으로 작업을 이어나갔고, 이를 통해 꾸준히 디자인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쌓아갔어요. 이런 노력 덕분에 디자인을 포기하지 않고 전공을 살릴 수 있었어요.
현대카드 Design Lab는 어떤 회사인가요?
▲ 현대카드 Design Lab
현대카드 Design Lab은 현대카드 내외의 모든 시각 커뮤니케이션 터치포인트(visual communication touch point)를 산출해내는 부서입니다. 주요 업무는 현대카드의 카드 플레이트 디자인(card plate design)을 통해 기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구축하는 것이고, 그 밖의 공간이나 행사 등에 관련한 시각화 작업까지 진행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아이덴티티 디자이너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현대카드로 이직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기업에 소속되어 하나의 브랜드만 깊이 있게 집중하는 디자이너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에이전시에 있으면 다양한 기업의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지만, 하나에 몰두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러다 마침 하나의 브랜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그게 마침 디자인으로 유명한 현대카드였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죠.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제 디자인이 CEO에게 선택될 때인 것 같아요. 현대카드처럼 큰 조직의 CEO에게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카드 상품이 출시되고 대중들의 반응이 좋아 잘 팔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기억에 남아요. 디자인을 통해 대중과 이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직무 도중,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본인만의 슬럼프 극복 법이 있나요?
저는 일하면서 거의 항상 슬럼프 상태인 것 같아요. 제 디자인에 별로 만족해본 적이 없어요. 슬럼프는 극복하려 하면 더 힘든 것 같아요. 슬럼프라는 생각이 들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업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대카드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중 ‘배민 현대카드’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프로젝트의 모든 단계가 디자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는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배민 특유의 키치(kitsch) 한 정서와 현대카드의 세련된 정제미. 둘의 기존 아이덴티티가 워낙 상반되기 때문에 접점을 찾기 위해 내부에서 꽤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고유의 정체성이 강한 두 회사의 합작 카드이기 때문에 배민의 기존 에센스(essence) 만으로 디자인하기도 어려웠어요. 여기서 배민의 기존 에센스란, ‘한나체’, ‘도현체’로 대표되는 전용서체의 볼드(bold) 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플레이나 배민 캐릭터를 의미합니다. 타사 합작 카드는 그런 식으로 많이 디자인하는데, 현대카드는 그렇게 디자인하면 합작의 의미가 없다고 보더라고요. 어떻게 해서든 ‘다르게’,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해요. 그래서 뭐든지 쉽게 진행되는 법이 없습니다.
저희는 배민에서 연상되는 수많은 키워드를 찾아가며 방향성을 탐구했고, 결과적으로 ‘음식을 먹는 즐거운 경험’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키워드를 도출했습니다. 수많은 시안 중 저희의 이목을 끄는 시안이 있었는데, 바로 ‘꺼내면 배가 고파지는 카드’라는 아이디어로 음식 사진을 크롭(crop)한 카드였어요. ▲ 떡볶이 ▲ 계란후라이 ▲ 김까지 한국의 소울 푸드를 러프하게(rough) 카드 위에 얹은 시안이었는데 디자인도 신선하고, 의미도 정말 쉽게 전달됐어요. 다소 파격적인 방향이었지만 CEO도 좋게 봐줘서 디자인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 배달의 민족 X 현대카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 카드
이 디자인들은 실제로 작업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최대한 진짜 음식처럼 느껴지게 하는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후가공을 통해 계란 프라이의 매끈한 표면이나 김의 거칠하면서도 기름기가 반질반질한 텍스처(texture)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몇 달 동안, 이렇게 떡볶이와 계란 프라이 카드에 진심인 제 자신을 보면 재미있기도 했지만,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수단으로서의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흥미'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흥미도 될 수 있지만 ‘사물을 보는 흥미로운 시선’이 좀 더 제가 의미하는 바와 알맞겠네요. 길거리만 둘러봐도 ▲ 가로수의 형태, ▲ 바닥의 질감, ▲ 태양빛에 따라 변하는 건물의 형태 등 조형적으로 뜯어보면 재밌는 영감을 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조형적으로 바라보는 습관은 시각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 직업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게 해 주는 방법인 것 같아요.
디자이너라는 직업만의 매력이 있다면?
현실적인 측면에서 시각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장점은 꼭 어딘가에 소속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주변의 다른 전공의 친구들을 보면 꼭 기업에 취직을 해야 전공을 살려 일할 수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뜻하지 않게 취직 준비가 길어지기도 하는 듯합니다. 반면 시각 디자이너의 경우,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어요. 소속된 회사가 없다고 백수인 게 아니라,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도 있죠. 전체적인 업계의 연봉이 비교적 적다고는 하지만, 다른 업계에 비해 자유롭다는 점이 장점인 직업이에요. 크리에이티브(creative) 산업에서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매우 넓고요.
앞으로 원하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막연한 꿈이지만 나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싶어요. 필드에서 열심히 일해서 쌓은 나름의 인사이트(insight)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도움을 준다면 보람찰 것 같아요.
포트폴리오 준비에 대한 팁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핀터레스트(pinterest)나 비헨스(behance)를 되도록 많이 보세요. 지속적으로 시각물을 디깅(digging)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아요. 핀터레스트를 통해 시각적인 인사이트를 얻고, 비헨스를 통해 디자인이 전개되는 과정을 공부해보세요. 비헨스는 프로젝트 단위로 되어있어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더 도움이 될 겁니다.
학교 과제는 중요한 포트폴리오 콘텐츠가 될 거예요. 학교 밖에서 새로운 작업물을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학교 과제에 충실한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기간 안에 어떻게든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으니까요. 과제와 더불어 적어도 3학년 과정부터는 ‘나만의 작업물’들을 많이 만들어가세요. 대외활동을 한다면 시각디자인 포트폴리오가 될 만한 것만 골라서 하시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저는 ▲ 졸업 작품, ▲ 4학년 과제, ▲ 3학년 때부터 해 오던 개인 작업으로 신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어요.
덧붙여 레퍼런스(reference) 없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 하면 디자인이 너무 어렵게 느껴질 거예요. 우리는 아티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디자인을 참고하고, 새롭게 편집하여 나만의 무언가를 만든다’라는 생각을 하면 작업이 훨씬 효율적이게 될 거예요.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 학교, 인생 선배로서 현재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요즘은 디자인을 전공했다고 꼭 디자이너가 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다행히 디자인 전공은 적용할 수 있는 직업군이 많아요. 때문에 디자인할 수 있는 것을 강점으로 가지고 다른 직업을 선택해도 나쁘지 않아요. 함께 학교를 졸업했던 친구들 중에도 현재 디자이너가 아닌 친구가 더 많아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디자이너가 되지 마라’가 아니라, 대학을 나와 전공을 살리지 못했다고 시간을 낭비한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직업으로서 ‘디자이너’라는 단어에 너무 큰 무게를 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디자인도 결국 수많은 산업 속의 직업 중 하나일 뿐이에요. 요즘은 너무 한 가지 직업에만 얽매일 필요가 없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학교에서 배운 재주를 활용해서 본인이 즐거울 수 있는 일에 적용할 수 있다면 대학생활 4년은 분명 의미 있는 시간일 거예요.
이번 인터뷰를 통하여 단어의 뜻만 알고 있었던 디자이너에 대해 디자이너란 어떤 직업인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 부분에 대해서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디예 학우들뿐만 아니라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있는 학우들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저만의 길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공모전을 참여하면 왠지 저도 공모전을 해야 할 것 같고, 주변 사람들이 대외활동을 활발히 하면 저도 대외활동을 같이 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건용(13•시디) 동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주변에 휩쓸리지 말고 본인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면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어요. 디자인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과 학부 시절 전공을 꼭 살려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덜 수 있었습니다. 진로와 전공에 대한 고민을 가진 학우들이 이 기사를 통해 마음의 짐을 덜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