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릴 만큼 무언가에 집중하기 좋은 시기인데요. 혹시 지금 학업에만 몰두하며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미루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금세 지나가 버릴지도 모르는 대학 시절에 호기롭게 도전해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시작이 어렵다면 먼저 본인의 관심사를 깊게 들여다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오늘 만나본 남현욱 동문 (16·산디)은 사회문제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전시를 통해 표현한다고 합니다. 함께 그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2018년에는 FOMP(filament of memory project)라는 이름의 위안부 피해자 기림 전시에 기획팀장으로 참여했습니다. 같은 해 우리 학교 산업디자인 학과 졸업 전시회에서 기획팀을 맡기도 했고요. 지금은 4회째 전시를 준비 중인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전시 '공존' 팀의 회장을 맡고 있죠. 공존은 共(함께할 공), Zone(공간)의 의미를 합쳐,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전시 팀이라는 뜻을 가진 인권 전시 팀이에요. 부회장 3회, 기획팀장 2회를 맡으며 벌써3년째 참여하고 있습니다.
▲ FOMP(filament of memory project)
Q. 기획부터 전시까지, 전시회는 어떤 절차로 진행되나요?
근본적으로 전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행위죠. 교육적이던, 예술적이던, 오락적이던 기획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전시라는 틀을 이용하는 것이고 이러한 점은 형태만 다를 뿐 다른 직업군의 일 또한 같을 것으로 생각해요. 전시마다 구체적인 일정과 절차는 모두 달라요. 기획이 최대한 구체적일수록 차후 전시에 지장이 없죠. 최소 6개월에서 1년의 기획 기간을 두고, 전시에 대한 ▲ 컨텐츠 기획, ▲ 배경조사, ▲ 수요 조사, ▲ 전시 장소 물색, ▲ 작가 물색, ▲ 후원 모금, ▲ 홍보 등 다양한 일을 진행하게 돼요. 항상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잘못될 경우의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하고요.
전시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품과 스토리 동선 등을 빈틈없이 준비해서, 관람객들이 방문했을 때 부족한 점이 없도록 해야 해요. 그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전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 전체를 구성해야 하죠. 동시에 관객들과 전시 전후로 끊임없이 주제를 놓고 소통하고, 내부에서도 팀원들과 함께 조율하면서 전시를 진행해야 하고요.
Q.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설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나요?
2016년 2기 공존 전시가 저의 첫 전시였는데 사실 시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고등학생 시절부터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사회문제와 인권문제를 접해왔었고, 부전공이 디지털 아트학이라서 작품 제작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전시를 통해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현장을 경험하고 공부를 거듭하면서, 전시를 통해 한두 번 외치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사회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피해자는 항상 약자이고,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은 잘 모르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거죠. 그렇지만 누군가는, 혹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사회문제에 대해 꾸준히 말하고 공론화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공론화를 통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었거든요.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지금 하는 일에 더욱 진지해졌어요. 정말 질문처럼 인식을 바꾸는 데 앞장서서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해오고 있었네요. (웃음)
Q. 이전 전시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회에 올바른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기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리고 그러한 전시회의 주체가 대학생이다 보니, 많은 분이 호감을 표현해주셨어요. 어떤 분들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기도 하셨고, 또 어떤 분은 저희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지지하는 뜻을 밝히시기도 했죠. 전에는 저희를 기특하게 생각하여 전시 전 적극적인 도움을 주신 분들도 계셨어요. 특히 저희 또래 관람객보다 30~40대분들이 오히려 전시 주제에 더욱 공감과 지지를 해주시는 편이에요. 물론 많은 관람객분들 역시 저희 작품을 공감해주시고 습득한 다양한 정보를 이해하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Q. 기억에 남는 전시회 에피소드가 있나요?
부정적인 것 하나 긍정적인 것 하나 말씀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인권 전시이기 때문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셨어요. 하지만 전시 준비 기간 중 저희 포스터가 찢어지거나 스프레이를 들고 전시장에 방문하는 등 저희 전시에 악의를 가지신 분들도 있었죠. 아마 저희의 전시에 대해서 오해하고 계시거나 색안경을 끼고 지켜보시는 분들이었을 것으로 생각해요. 다행히도 그러한 분들이 극히 소수였기 때문에 저희 팀원들을 잘 다독여서 잘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힘든 일을 같이 겪고 나면 더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 컨텐츠는 ‘평온의 방’이에요. ‘평온의 방’은 참여형 컨텐츠로, 전시 관람을 마치고 저희가 별도로 꾸며놓은 공간에서 제공된 종이에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공존만의 기획이죠. 첫 전시 때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모든 글을 소중하게 보관 중이에요. 실제 생존자분들이 생각보다 더 많이 방문해주시곤 하는데, 이때 의지도 다잡고 저희가 좋은 일을 하고 있고 올바른 방향으로 준비한 것 같아 뿌듯해져요.
Q. 올해 말 전시를 앞둔 공존은 무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나요? (전시 목표가 무엇인가요?)
저희 공존 2019 팀에서 [탈하다,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展]라는 전시를 12월에 서울에서 진행하기 위해 준비 중이에요. “공존은 성폭력 피해자라는 단어를 성폭력 생존자라는 긍정적이고 생동감 있는 단어로 바꿔 부르자”라는 주제를 가진 전시입니다. 올해까지 4년 동안 같은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고, 전시 기간 동안 사회적인 분위기는 물론 사람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존재해요.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 ▲ 성폭력 생존자를 주제로 논의하고, ▲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 도움의 손을 내밀자는 주제를 가진 전시입니다.
‘탈(脫)하다’라는 전시 명에서, 벗을 탈(脫)은 성폭력과 2차 피해 등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생존자를 의미해요. 그들이 폭력 사건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닌 그 자체로 능동적이며 활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脫(탈)은 기뻐할 태로 쓰이기도 해요. 고통에서벗어나 자신감을 되찾을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들이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 인권 소모임 공존
Q. 자신만의 목표 의식을 성취해 갈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우선 시작하라는 말을 가장 먼저 전하고 싶어요.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용기예요. 본인이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큰 문제들은 선배들,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닥친 문제들은 하나하나 해결해나가고, 앞을 향해 달려 나가볼 수 있을 시기가 대학 시절이 아닐까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 뒤에 그동안 스스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여러분이 처음에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성장하고 발전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좋은 분들을 만났기 때문에 운 좋게 기회를 잡았고 성공적으로 전시를 치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용기를 내어 시작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고 떠나보내게 됐을지도 모르죠. 항상 용기를 가지시고 원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해요. 그게 가능해진다면 원하는 결과를 조금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거예요.
같은 공존 팀원으로서 전시를 이끌어주시는 회장님을 인터뷰하면서 저의 생각 또한 견고해지는 시간이었는데요, 공존을 시작하기 전, 전시 참여에 있어 많은 고민을 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나의 작품이 생존자분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포기했더라면 마음 한편에 큰 후회가 자리 잡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과 목표 의식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새로운 일을 스스로 추진하기란 쉽진 않지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여러분도 도전을 통해 원하는 기회를 꼭 잡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라는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내 생각을 표현하고 구현할 방법은 많으니까요. 미래에 대학 시절을 떠올렸을 때 이것만큼은 정말 뿌듯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보람찬 대학 시절을 보내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