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나와서 뭐할 거냐!"던 어른들의 말은 이제 옛말이 된 것 같습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의 매력에 빠져, 우리대학교 학생들의 철학과 진학률도 매년 높아지고 있다고 하죠? 그렇다면 철학과 동문은 철학과 나와서 뭘 하고 있는지, 진짜 한번 알아볼까요? 박이강 동문을 만나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철학과 07학번 박이강입니다. 현재 우원식 국회의원(서울 노원을,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보좌진(9급 상당)으로 근무 중입니다. 올해부터 해서 벌써 9개월 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사실 아직 졸업을 못했습니다. 복학하면 4학년 1학기가 되겠군요. 그러니까 졸업생 동문은 아닙니다, 하하.
저를 '비서'라고 표현해 주셨는데, 이는 "일부 중요한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직속되어 있으면서 기밀문서나 사무를 맡아보는 직"이란 뜻입니다. 더 넓게 국회의원 보좌진은 3개 직책으로 보좌관, 비서관, 비서로 구분되며 별정직 공무원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공무원 신분이죠. 우원식 의원님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전공(상임위)에 배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하고 있고, 세부적으로는 의원실 내에서 대학교육과 문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까지 대학을 다녔고, 개인적으로 예술인이신 부모님께 받은 영향도 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실 막내이기 때문에 커피, 복사, 팩스는 기본이고요^^ 입법부에 속해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법을 만드는 일'을 우선적으로 합니다.
대학에 관한 법, 문화예술계에 관한 법률을 만들고(제정), 고치는(개정) 일을 하지요. 그리고 국정감사, 국가예산 편성, 국가예산 결산 등 입법부로서 행정부와 더불어 국정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말이 조금 거창한가요?^^ 지금까지 제가 만들어서 최종적으로 발의된 법안은 "무분별한 학과 통폐합 방지법", "학점 당 등록금법", "적립금 비례 등록금 책정법" 등 3개입니다. 자세한 법안 내용은 국회 홈페이지(정보현황-입법현황-"고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검색)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실은 언론인이 되고 싶었어요. 만약 기자가 된다면 정치부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평소에 정치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죠. 그러던 중 지난 2012년 여름방학 때 마침 국회 우원식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아르바이트)을 모집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 동안 입법보조원 생활을 무급으로 했지요. 그 때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당시 대법관 후보자 4명에 대한 청문회가 있어서 그 준비 자료를 보조하느라 거의 매일 새벽에 퇴근할 정도로 업무량이 상당했는데요, 그럼에도 열과 성을 다해서 보좌관, 비서관님들을 보조했었습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정치'라는 커다란 세계를 보면서 나름대로 느끼고, 실천하고 싶었던 부분들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일하는 보좌관님도 제가 열심히 했다고 생각을 하셨는지, 졸업하고(사정상 못했지만) 다시 와서 일하자는 제안을 하셨죠. 그래서 학적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2013년 2월부터 우원식 의원실 비서로 정식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어요. 제가 그 때 새삼 깨달은 것은, 모든 일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어쩌면 기회조차도 그렇죠.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오늘 내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건 그 자체만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거예요. 누구나 진심어린 열정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니까요.
정치라는 것을 어렵게 바라보지 않게 된 점입니다. 물론 '정치적 판단'이라는 것을 체득한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것이 ‘합리적이다’라는 부분을 판단하는 것에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철학과 공부가 사실 ‘이것이 논리적으로 맞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되물음과 논박의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어느 철학자의 말을 외운다던가 하는 따위의 것은 불필요한 공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철학자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요. 다만 무엇이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가에 대해서 더 깊게 고민할 뿐입니다. 정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일들, 국민들로 하여금 눈살 찌푸리게끔 만드는 것들이 모두 비상식적인 사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당사자가 있는 현장으로 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무엇이 더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인지 판단하는 것이 정치라고 봅니다. 아직 정치계 초년생이지만 이런 마음은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철학과를 나오지 않았다면, 이런 기본적인 논리와 사고에 대해서 굉장히 무감각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현실적으로 인문학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고민이 많음을 알고 있어요. 사실 현실세계에서 '취업'이라는 것과 연결 지어 보면 아무래도 소외받아온 게 사실이죠. 정부와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사고를 지닌 인재가 중요하다!'고 입으로는 얘기하지만 정작 취업시장에서는 그 외적인 것들이 우대받아왔으니까요. 우리 과에서 우스갯소리로 “불러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다”라는 말을 해요. 그만큼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통용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찾아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겠지요. 물론 인문학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취업'에 목적을 두는 학문이 아니라 '삶'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또한, 철학과에 진학해서 우리나라 세태와 연결해 보았을 때 조금 불안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공부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구나'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씩 퍼즐을 맞춰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며, 어떤 상황을 꺼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을 겪은 것이지요. 이것은 취업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면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국어국문, 영어영문, 사학, 철학만 꼭 인문학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경영학을 하건, 디자인을 하건 어떤 일련과 과정을 도출하기 위한 사고와 비판이 담겨있다면 모든 학문이 인문학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고와 비판'을 통해서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이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겠죠. 인문학도 학생들이 취업시장에서 불리한 이유는, '인문학'이 비인기라는 사회적 현상 보다는 지원자의 사고의 깊이가 '인문학도라는 사회적 시선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게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스스로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아직은 정치권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아요. 곧 국정감사도 있고, 나라의 결산과 예산을 심의합니다. 다행히 정의롭고 존경할 만한 의원님과 보좌관님들을 만나 무럭무럭 자라고 있답니다. 꼭 정치인이 된다는 생각보다는 여기 있는 동안만큼은 대학생, 청년의 대변인 역할을 더 하고 싶습니다. 그런 취지로 대학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기획한 것도 있고요. 그 뒤의 일은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하.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여기서 막내 비서 생활을 몇 년 하는지는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너무 재미있어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아, 너무 바쁘다는 것은 조금 아쉽긴 합니다.^^
이전에 학교에서 RC 진로설계 담당조교를 하면서 제가 후배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어떻게 하면 나를 찾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이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씀드리는 걸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문 기사와 책을 읽으라고, 영화와 연극을 보러 다니라고 말하죠.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건은 당신을 분노하게 하거나 슬픔을 유발하지만, 대중들이 광분하고 흥분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래?"라고 여긴다면, 당신에겐 스스로 세운 ‘기준’이 있는 거예요. 이런 것이 바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 가운데 하나입니다.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지만 지면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요, 국회 관련 업무나 진출, 기타 자질구레한 일까지 터놓고 물어보고 싶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쪽으로 메일 보내주세요(tilooa@naver.com). 후배님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의 페이스북에 '흔한_의원실_막내가_봐야할_서류.jyp'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사진
요즘도 자주 밤을 샌다는데요. 언뜻 봐도 일이 정말 많아보이지만, 이마저도 승화시킨 그의 재치가 더 돋보입니다.후배들을 위해서 손수 메일까지 열어주신 박이강 동문의 따뜻한 인성에 감동하게 되는데요. 이런 됨됨이라면 보좌관으로 하여금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만하죠? 학우 여러분들 또한 학과의 굴레에 갇히기 보다는 평소에 나를 돌아보며 인성을 다듬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를 거친다면 자신만의 소중한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전공공부를 활용하는 범위는 저마다의 그릇에 달려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