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도시락 토크 콘서트의 열기는 이에 개의치 않고 뜨거웠습니다. 제목부터 감탄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이번 도시락 토크 콘서트는 80여 명에 달하는 놀라운 신청자 수를 기록했는데요. 증권투자로 경이로운 수익을 얻은 서효원 학우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원래 인문과학부로 입학을 했습니다. 학과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아 경영학과로 전과를 했지만 그 때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했죠. 그러던 중 2번의 터닝 포인트로 투자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투자자의 꿈을 갖다>
우연히 절친한 고향 친구를 따라 도곡동 투자설명회를 가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투자를 유치하시는 분께 투자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시간을 쓰는 형태에 따라서 직업이 4개의 군으로 나눠진다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 자신의 시간을 타인을 위해 쓰는 사람(노동자), ▲ 자신과 타인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는 사람(고용주), ▲ 자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는 사람(자영업자), ▲ 타인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는 사람(투자자)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투자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나의 멘토를 만나다>
군대에서 서울대 출신 동기가 YTN을 시청하며 선물옵션 거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병장 월급이 97,500원이었는데 그 동기는 억대 금액으로 거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알려달라고 부탁했을 때는 워낙 위험성이 높아서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후 2주 동안 쫓아다녀서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군대에서 10만원을 넣어 투자를 해보았는데 3일 만에 5만원이 불어 15만원이 되었습니다. 단맛을 보고 난 후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가진 습관 중 하나는 매일 엑셀 파일에 코스피를 기록하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죠. 25살에는 서울대 앞에 고시텔을 잡아 금융과 영어공부를 병행했습니다. 총알(돈)이 없어 사촌형에게 50만원을 빌려다가 60만원으로 갚고, 남은 20만원을 자본으로 투자하기도 했고, 부모님께서 저를 위해 저축해두신 어학연수비 2,000만원 중 500만원을 빼서 투자를 했습니다. 그 500만원이 콜옵션으로 2시간 만에 1,000만원이 되더라고요. 당시엔 직감매매(본인 직감대로 매매)였기 때문에 왜 돈을 벌었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해 글로벌 증시가 급상승 했던 거였어요.
자신감이 붙은 뒤, 1500만원을 더 인출해 선물옵션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그 금액이 0원이 되기까지는 2주에 불과했습니다. 시점 내에 목표 값에 도달하지 못하면 얼마를 투자했든 0원이 되는 구조인데, 마감시간(만기 날)이 다가왔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모니터에 아지랑이가 피고, 1.5평 정도 되는 고시텔 방이 빙빙 도는 듯한 현기증까지 느꼈습니다. 변기를 잡고 울면서 한강을 가야 되나 싶더라고요. 되게 슬프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돈 2천에 죽는다는 게 말도 안 되고, 외동인데다가 기독교는 자살하면 안 되니까(웃음)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몰래 인출한 금액 중 주택청약은 깰 수가 없어서 제 2 금융권에서 1,500만원을 대출했습니다. 그때까진 몰랐는데, 대출하기 참 쉽더군요. 1,000만원을 메우고 500만원으로 다시 투자를 했는데 일주일도 안 걸려서 다시 0원이 됐습니다. 그때는 진짜 인생이 끝난 것 같았어요. 사채업자가 와서 장기를 빼가는 생각도 했고, 하늘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습니다. 진짜 땅만 보고 살았죠. 그 때 문제가 됐던 게 이자였는데요. 연이율이 39.8%인가였는데 한 달에 원금 빼고 이자만 40만원씩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한 번도 일을 쉬지 않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교내근로를 하고 밤에는 오남펍에서 알바를 하며 이자내기에 급급했습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신 아버지는 투자에 'ㅌ'자만 꺼내도 손목을 자르시겠다며 은행도 못 가게 하셨어요.
학우 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절대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좋아하는 일(투자)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마침 그때는 법이 바뀌어 선물옵션에 투자하기 위해선 1,500만원 이상을 증권사에 예탁해야 됐기 때문에, 주식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경력개발포인트(SP) 500점으로 탄 100만원의 장학금으로 다시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2013년 1학기,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방위산업체 주식에 흔히 말하는 '몰빵'을 했는데 중국에 있는 동안 그 금액이 4배가 됐습니다. 3월에 북한에서 미사일을 쏜다고 위협했기 때문이죠. 그 때부터 주식을 굴려서 1700만원까지 벌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투자를 하면서 북한의 덕(?)을 많이 봤는데, 북한이랑 사이가 좋아질 것 같으면 협력주를 사고 나빠질 것 같으면 방산주를 사면서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때가 투자생활 중 유일하게 운으로 돈을 번 때라고 생각합니다.
1700만원 중 원금 100만원을 빼고 나머지 돈으로 다시 선물옵션 시장에 들어갔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1500만원 이상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죠. 이전 투자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엔 모의투자를 통해 제 실력을 스스로 검증해 봤다는 것입니다. 모의투자대회에서 5번 이상 상을 탔고, 최종 1등은 아니었지만 1위를 한 번씩은 찍고 내려왔습니다. 또 이때 스스로 투자에 대한 원칙을 정했습니다.
1. 매일 아침 시가를 보고 종가를 예측한다.
보통 2~3포인트 내의 오차범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Lotto 숫자를 하루에 5개씩 맞춘 것과 비슷합니다.
2. 환율을 중시한다.
수급에 따라 폭락의 폭을 정했는데, 10번 중 8번 정도는 맞고 2번 정도는 손실을 봤습니다.
3. 전부를 걸지 않는다.
작년 10월에 투자한 금액이 올해 3월 하순에 누적수익 10억을 돌파했습니다. (손익 10억 500만원, 수수료 800만원) 제 삶의 목표는 1000억이고, 얼마든지 그만큼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공부도 많이 했고 노력한 결과죠. 그렇게 번 돈으로 차를 샀습니다. 제 차도 샀고 아버지의 차도 좋은 외제차로 바꿔드렸습니다. 또 100평 가량의 상가건물을 매입 했는데 스터디카페로 만들 예정입니다.
Q. 처음에 반대하시던 부모님의 반응은 현재 어떠한가요?
A. 처음에 실패했을 때는 군대에서 투자를 가르쳐줬던 형 직장에 찾아가 형 때문이라고 멱살을 잡고 울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는 돈을 벌고 다시 찾아갔습니다. 고맙다고. 아버지도 슈퍼스타K에 나오는 것처럼 처음에는 반대하시다가 지금은 응원해주십니다.
Q. 외교적인 부분을 중요시 하시는 것 같은데, 정보를 어디에서 얻나요?
A. 신문과 신문 이외의 것에서 얻는데, (신문 이외의 것에는) 주식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있는 찌라시와는 다르게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곳입니다.
Q. 펀드도 하나요?
A. 합니다. 펀드는 원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돈을 버는 시장(선물옵션)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오히려 저에겐 안전자산 격입니다.
Q. 주식/선물/펀드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얻은 것은 무엇인가요?
A. 선물옵션입니다. 구조상 제일 위험이 크고 수익도 크게 되어있죠. 다큐멘터리를 보면 200억 이상 잃은 사람도 있습니다.
Q. 투자에 공부만이 다가 아닌 것 같은데,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게 있다고 생각하나요?
A. 있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정보를 놓고도 각자 해석이 다르죠. 이 중에 맞는 해석을 한 사람만 돈을 버는 것인데 다들 공부는 많이 합니다. 어느 정도 타고 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 만에 100만원을 10억으로 만든 서효원 학우, 남들이 봤을 때 1번의 대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는 노력에 대한 성과로 1000번의 소박을 거뒀다고 말합니다.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연세인들이 서효원 학우처럼 부단히 노력한다면, 분명 값진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