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개최돼 크나 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제 17회 인천아시안게임. 올 한 해 국내에서 가장 이슈가 됐었던 큰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큰 화제거리가 됐던 만큼 수많은 메달소식을 국민들에게 안기며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선수들의 정정당당한 경기를 볼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필요했겠죠. 그 중에는 통역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통역 봉사자들은 인천에 모인 세계 각국을 보다 가깝게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역할을 해주었는데요, 우리 학교 사학과 13학번 조희윤 학우도 통역 봉사자로서 큰 역할을 해내고 돌아왔습니다.
조희윤 학우는 인도와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외교관을 처음 꿈꾸기 시작하던 중학생 시절, 선교 활동을 하시던 부모님을 따라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후 5년여간 그 곳에서 학교생활을 하며 특유의 밝은 성격으로 인도생활에 완벽히 적응하였고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인도의 고등학교는 교과 과정 시험이 전부 논술 형으로 출제되고 각 과목당 시험시간이 3시간이나 될 정도로 심화된 내용이 많았으며, 또 그 중에서도 역사 과목은 늘 필수적인 항목으로 제기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심화된 역사과목을 배우다 보니 인도의 역사를 깊게 알게 됨은 물론, 나아가 인도와 한국이 비슷한 식민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인도에 더 오래 체류하거나 또 다른 국가로 유학을 권유하시던 부모님의 생각과는 달리 조희윤 학우는 돌연 한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인도에서 심화된 공부를 하게 될수록 일찍 타지로 건너온 탓에 조국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없었던 아쉬움이 점점 수면 위로 올라옴을 느꼈기 때문이고, 또 외교관의 꿈을 위해서는 타 국가로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자국에 대한 역사 인식이 그보다 더 우선 시 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본교 사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의 활발한 성격이 다양한 활동을 주도적으로 시도하는 데 큰 도움이 돼 대학에 입학해서도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는데요, 학생회, 타이탄스(연세대 중앙 아이스하키 동아리) 등의 교내활동부터 연극 동아리, 해외봉사활동 등에 이르는 교외활동까지 쉬지 않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천아시안게임 통역봉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딛게 된 그녀,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조희윤 학우가 인천 아시안게임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장기적으로는 꿈을 향한 또 한걸음이었습니다. 외교관의 기본 자질로는 언어적 능력과 더불어 '소통'하는 능력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통의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통역원으로서의 임무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단기적인 이유로는 영어 사용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습니다. 인도에서의 5년간 생활은 자연스럽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귀국 후 본교에 입학을 한 후 반년 만에 영어 실력이 급격히 하락함을 느꼈습니다. 인도 친구들과 소통을 할 때에도 이전과 같지 못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지만 막상 학교에서는 생각만큼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이 없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 홈페이지의 외부기관 공고를 통해 인천아시안게임 통역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시아권인 인도에서 오랜 시간 생활을 하다 온 이력이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와 정서를 보다 잘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거라 믿고 자신있게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시안게임 통역봉사는 크게 두 가지 분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TD통역(TD : Technical Delegate의 약자로 종목별 경기운영을 총괄적으로 책임 하는 기술대표)과 의전통역이 그것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VIP들의 통역을 돕는 의전 통역과는 달리, TD통역은 각 종목당 한 명씩 임명된 기술대표의 통역업무를 전담하게 됩니다. 조희윤 학우는 일반 VIP들을 전담하는 것보다 업무상 보다 전문적인 요소가 포함된 TD통역을 통해 국제 경기가 운영되는 원리를 직접 경험해 보고자 했습니다.
선발은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을 보게 되는데, 면접은 영어면접으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일대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희윤 학우가 느꼈던 것은 심사의 기준으로 스펙보다는 남다른 열정을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인천아시안게임이 학기 중에 진행되는 행사였던 만큼 학업을 잠시 중단하면서까지 올인하는 마음으로 참여할 각오가 되어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했다고 하네요. 면접 때 그녀가 주로 어필했던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먼저 인도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큰 축제인 아시안게임의 정신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히 외국생활을 서술하는 것이 아닌, 그 생활 과정 속에서 겪었던 구체적인 가치관 변화와, 이로 인해 본인이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겠죠? 두 번째로 아이스하키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지게 된 운동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통역원은 물론 말로 봉사하는 업무를 하지만, 그 내면에 아시안게임의 기본이 되는 스포츠정신이 기본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겠죠.
인천아시안게임은 2014년 9월 19일에 개막해 10월 4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종목에 따라 경기 일정이 다르기 때문에 통역원들의 일정도 개인에 따라 상이했다고 하는데요, 조희윤 학우가 전담하게 된 TD는 싱가폴 국적의 테니스 기술대표였다고 합니다. TD는 직책 특성상 해당 종목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와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측과 여러가지를 관리 및 총괄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TD의 일정이 곧 TD통역원의 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막 전 통역원들은 사전 공식 OT를 2회, 추가적으로 1회의 TD통역원 합동회의를 통해 직무교육을 받고 일정에 임하게 됩니다. 통역원들을 위한 숙소는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 기숙사로 지정됐고, 식사는 바쁜 점심시간을 위한 간단한 도시락이 제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조희윤 학우의 인천아시안게임에서의 하루 일과를 시간 순서대로 자세하게 살펴볼까요?
08:30 : TD가 머무는 호텔로 출근, 전용차량으로 TD를 에스코트해 경기장으로 이동
09:00~09:30 : 경기장 도착
09:30~10:30 : 심판·자문위원들과 일일 경기 정보 공유 및 회의
10:30~19:00 : 당일 경기 시찰 및 진행 감독
19:00~20:00 : 당일 경기 뒷정리 및 익일 경기 스케줄 조정 회의
20:00~ : 퇴근 및 인천테니스협회, 대한테니스연맹측과 저녁식사
▲ 통역을 담당했던 TD와 조희윤 학우
1. 통역인으로서의 고충
테니스에 대해서 사전 공부를 하고 봉사에 임했는데도 전문적인 지식을 짧은 시간에 쌓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경기 중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 TD와 조직위원회 사이에서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혼도 많이 나고, 실제로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많이 울기도 했지만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오면 그런 힘든 감정들을 차마 티 낼 수 없었기 때문에 눈으로는 울고, 말로는 웃는 모순된 상황이 많이 연출됐다고 하네요.
2. 인도 국가대표 팀 응원
유난히도 테니스 심판, 감독, 자문위원 사이에는 인도인이 많았다고 합니다. 조희윤 학우에게 있어서 인도는 언제나 제 2의 고향이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친해지려 노력했다고 하는데요. 인도와 대만의 혼성 복식 결승전 날,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던 한국 경기 때와는 달리 결승인데도 5000명을 채울 수 있는 경기장에는 채 10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경기장에 왔습니다. 비록 조국의 경기는 아니었지만 많은 관중들이 참여하지 않아 경기 분위기가 저하 될까, 일당백의 큰 소리로 인도팀을 응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이 닿았는지 인도팀은 승리했고, 경기 후 감독과 선수들이 조희윤 학우를 직접 찾아와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인도 국가대표 선수와 SNS로 안부를 주고받는 영광(?)까지 누리고 있다네요.
1. 아쉬웠던 점
처음에는 많은 사전 정보를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는 개인적 관심에 의한 막연한 도전에 가까웠던 상황이어서 통역업무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잘 몰랐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인천아시안게임 측에서도 통역관으로서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자세하게 전달해 주지 않아서 합격 후 몇 달간은 막연히 회화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통역관들을 위한 본격적인 OT 및 회의가 6월 하순이 돼서야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엄청난 규모의 행사인 만큼 수많은 통역관들을 관리하는 일 자체가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 준비가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2. 개인적 성취
먼저, 이제까지 했던 활동들에 비하면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이 단연 가장 큰 규모의 행사였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첫 사회생활 예행연습으로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행사 자체가 세계적인 규모라는 것은 업무를 맡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큰 영광이었지만, 단 맛이 있으면 쓴 맛도 있는 법. 휴학을 해서라도 참여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원하고 갈망하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역원으로서 중간다리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발로 뛰는 육체적 피로 때문에 그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앞으로 살면서 어디에서 어떤 일을 부여 받던 늘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상황에 따라서는 하고 싶은 말도 참을 줄 아는 한 치의 여유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을 수용할 줄 아는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이 큰 기억으로 남는다고 합니다. 일단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이 모였고 다양한 나라 사람들, 그 중에서도 각국 귀빈들과 고위 관계자 등을 만나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더불어, 함께 통역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한 동기들 중에는 좋은 자극이 될 만큼 훌륭한 분들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앞으로 다가 올 날들에 더 열심히 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충분히 얻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꿈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입니다. 외교업무는 통역이 기본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세계 각지의 관계자들이 한데 모이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 자체가 조희윤 학우에게 큰 영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통역은 실무 경험이 크게 강조되는 영역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가 발 빠른 분위기를 익히는 데는 제격이었겠죠.
주변을 보면 무언가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이를 실행해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늘 느낍니다. 조희윤 학우 또한 남다른 열정 하에 여러가지를 도전해왔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고,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다고 합니다. 돈과 시간과 체력이 다소 소모되더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대학생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연세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꿈에 대한 확신이 있고, 이를 향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찾으려는 조희윤 학우의 자세를 보고 저도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그녀의 다음 목표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의 활약이라고 하는데요, 통역활동에 관심 있으신 학우 분들도 이를 향해 나아가 보시는 건 어떠실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