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은 더 이상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기회의 땅이었으며, 노력하고 갈구하는 자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유효한 이야기였습니다. 저 또한 운이 좋게도 만족할 만한 성취를 이루고 왔는데요. 바로 6개월간 모건스탠리에서 인턴을 하고 온 것이었습니다. 세계 속 작은 나라 대한민국, 거기서도 지방의 작은 도시의 학교에서 공부하던 제가 어떻게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형 투자회사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모건 스탠리 회의실 이재준 학우
영어는 항상 제 발목을 잡는 방해물이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가 글로벌화 되어감에 따라 영어는 미래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필수 언어로 자리 잡았는데요. 영어를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고자 저는 군 제대를 한 뒤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토플을 공부하였습니다. 저는 사실 중학교 때부터 굉장히 영어에 대해 콤플렉스가 많았는데요. 항상 다른 과목보다 영어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항상 좋지 못했습니다. 노력을 하면 언젠간 트이겠지 하는 영어가 저에겐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항상 영어를 못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교환학생 최저 조건인 토플 80점을 넘기는 것도 제겐 굉장히 버거운 일이었는데요.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교환학생 지원이 가능한 토플점수를 겨우 만들어 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 미국으로 지원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보편화된 영어를 배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제가 원했던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합격했고 그 중에 Davis라는 캠퍼스로 가서 제 일생 가장 꿈같은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사실 저는 제가 미국에서 현지인과 함께 인턴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말은커녕 미국에 도착해 기본적으로 들어야 할 수업도 잘 들리지 않아 매우 고생을 했기 때문인데요. 한국의 3000단위 수준의 경제학 수업을 그 곳의 현지 학생들과 함께 듣고 그들과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 수업, ▲ 시험, ▲ 발표, ▲ 조모임 모두 영어로요. 정말 수 없이 많은 고생을 했는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교수님께서 지난 수업시간에 퀴즈를 본다고 말했는데 저는 그것조차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아무런 준비 없이 수업에 가서 0점을 맞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 빵은 어떤 것을 먹을 지, 샐러드드레싱은 뭘 먹을 지, 추가 사이드메뉴 선택은 뭘 할 지, 물어보는 것이 굉장히 많아 음식주문도 잘하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정말 들리지 않던 영어가 미국에 간 후 3개월째, 학기로 말하면 봄 학기부터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면 적어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조금 무모하지만,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교내 취업센터를 방문하고 학교로 인턴십 설명회가 오면 항상 참여하고 또한 취업박람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요. 특히나 제가 있던 학교는 방학이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약 4개월에 가까운 기간이라 방학 때 무언가를 꼭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 근처 새크라멘토라는 큰 도시의 모건스탠리 회사에서 제가 다니던 학교 학생만을 대상으로 Financial Training Program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간 UC Davis라는 학교는 미국 내 30위권이자 세계 50위권에 육박하는 굉장히 좋은 학교였습니다. 그렇기에 이 학교 학생만을 대상으로 공고가 올라왔겠죠? 그렇게 험난한 지원과정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이력서 작성부터 험난했는데요. 한국어로도 작성해 본 적이 없는 이력서를 영어로 쓰려니 앞이 막막했습니다. 한국은 주어진 질문에 답을 채워 넣는 형식이라 특정한 포맷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반면, 미국의 이력서는 형식이 있긴 하지만 자율적이라 스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오히려 힘든 점으로 작용 했는데요.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취업센터를 찾아가 이력서 관련 샘플을 받아서 나름대로 작성해봤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력서를 보통은 1쪽 아주 길면 2쪽 안에 끝내야 하기에 그 짧은 분량 안에 저를 표현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는데요.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력서를 마무리 짓고, 그 다음 우리나라로 치면 자기소개서와 비슷한 cover letter를 작성해야 했습니다, 이 또한 인턴십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읽고 난 후, 내가 이 프로그램에 적합한 사람인 것을 타나내는 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마지막 문법교정은 함께 사는 룸메이트에게 도움을 받았네요. 이렇게 되돌아보니 정말 간단하게 보이지만 그 당시 저는 정말 하루 종일 그것도 몇 주씩이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데 보냈었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넣고 대망의 면접날이 다가왔습니다. 30분 동안 3명이 들어가서 면접을 봤는데요. 경쟁률은 5:1 정도로 47명을 뽑는데 약 250명 정도가 지원했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 취업문의 50:1, 100:1 의 경쟁률에 비하면 아주 낮은 수치지만 미국 현지인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커서 정말 떨렸습니다. 하지만 면접 때 운 좋게도 제게 유리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향후 3가지 산업에 투자를 한다면 어디로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요. 비록 뛰어난 영어실력은 아니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주식을 하고 있었고 평소 금융에 관심이 많았기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모건 스탠리 인턴 합격메일
그렇게 2주 후 제게 합격 메일이 왔습니다. 그 메일을 본 순간 정말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채용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저는 국제학생이라 영어가 서툰 점을 어느 정도 감안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제 열정과 관심을 잘 표현했다고 했어요. 이 때 정말 미국은 찾는 자에게 기회가 주어지며 실제로 어떠한 업무를 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능력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인턴십은 처음 3개월 동안 파트1을 진행하고 파트1이 끝날 즈음 소수의 인원을 선발해 파트2를 3개월 동안 진행 합니다. 7월부터 시작한 파트1에서는 선발된 47명의 학생들이 금융자산관리에 대해 총체적으로 배우게 되는데요. 모건 스탠리 Senior Vice President가 직접 강의해 매우 유용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도 금융자격증을 공부하면서 기본적인 것들은 대충 알고 있었는데 부사장의 경험을 사례로 들어서 설명을 들으니 정말 귀중한 강의가 됐습니다. 또한 인턴십 기간 동안 47명의 인턴들은 약 7명씩 조를 나눠서 팀별과제를 수행하게 됩니다. 산업 혹은 국가, 금융상품에 대해 조사하고 발표하는 것인데요. 이때 저는 제가 영어가 미숙한 점을 알았기에 저의 팀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반복해서 연습했습니다. 그리고 매주 배운 내용을 쪽지시험을 보게 되는데요. 이렇게 ▲ 인턴십 참여도, ▲ 쪽지시험 성적, ▲ 발표능력 등을 3개월 동안 종합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리고 그 점수를 토대로 47명 중 파트2로 갈 7명을 뽑게 되는데, 저는 그 최종 7명에 선발이 됐습니다.
▲ 모건 스탠리 인턴 part2 합격 메일
파트 2는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파트1 때 배운 내용들을 토대로 자신이 직접 주제를 선정하고 연구를 해 매주 10분 동안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파트2에 합격한 7명과 부사장이 모건 스탠리 회의실에 모여서 2시간 정도 각자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형식이었습니다. 저는 10분 발표를 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약 10시간 정도를 준비했었는데요. 자료조사, PPT 제작, 그리고 발표까지 역시나 영어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턴십 수료자들과 (가운데) 부사장 Jeffrey C. Won
그 과정에서 영어로 된 자료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 유용한 정보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이 뿐만 아니라 스피킹 실력도 날로 늘어갔습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제 투자방향 연구 발표 후 부사장이 직접 피드백을 해주는 시간이었는데요. 많은 이야기를 해주진 않았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정말 귀중한 정보들이었습니다. 투자에 대한 생각, 실제 어떤 식으로 투자회사가 돈을 버는지, 그리고 어떻게 자금운용을 하는지에 대해 주로 이야기 했는데 제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모건 스탠리 인턴십 동료들과 저녁식사
정말 제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지난 미국에서의 1년은 제 인생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이뤄낸 기간이었는데요. 특히나 모건 스탠리에서의 인턴은 제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로 꿈도 못 꿨을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변화 중 가장 큰 점은 제가 해외취업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점인데요. 지금은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게 되고, 영어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 홍콩, 싱가포르 혹은 미국 금융권으로 취업을 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인턴십 수료증
사실 제가 한 경험들을 똑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없기 때문에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조언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떻게든 해외로 나가 경험을 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해요. 세상에는 아직 많은 기회들이 존재하고 있고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한다면 본인이 원하는 일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요즘은 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워킹홀리데이, 정부지원 해외 인턴십 등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해외에서 체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1년 거주하며 느낀 점은 한국인의 인적 역량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선천적으로 우수한 두뇌와 대학입시로 단련된 근면성실함은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UC Davis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했을 때도 한국의 잠재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학우들도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혹은 현재 꿈꾸고 있는 이상적인 목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꿈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갔으면 좋겠어요. 물론 사회의 시선과 취업에 대한 압박, 경제적인 어려움 등으로 인해 사회와 타협해야 할 순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세계 어딘가에는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끔 도와줄 조력자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해외에 나가 여러 가지 경험과 기회를 토대로 여러분만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길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