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구호활동가이자 NGO 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세계시민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있는 한비야가 지난 5월 14일 우리 학교 대학교회에 왔습니다. 연세대학교 인문학센터 인문리더십 강좌 연사로서 '1그램의 용기'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학생들은 물론 원주 시민들까지 우리 학교를 찾아 대학 교회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럼 다들 한비야씨가 우리 가슴에 쏘는 뜨거운 불화살, 맞을 준비 되셨나요?
연세대학교 인문학센터는 2013년, 첫 걸음을 시작으로 체계적인 인문학 강연의 장을 열며 원주 시민들의 참여와 긍정적인 호응 속에서 인문 리더십 강좌와 시민강좌를 진행해 왔습니다. 이번 2015년도 1학기는 제4기로써, 'Life - 생활 속 현실과 미래 전망'이라는 주제로 기획돼 매주 뛰어난 연사들의 강좌를 열고 있는데요. 학기 초에 일정 인원을 선착순으로 접수 받아 추후 강연 참여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수료 후에는 리더십 동문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인문학적 사고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요즘, 우리 연세 학우 여러분들도 인문학의 향연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보는 것은 어떤가요?
▲ 한비야 소개 영상
불이 꺼지고 화면에 영상 하나가 켜졌습니다. 굶주림에 지쳐 있는 아이들, 약이 없어 죽어가는 아이를 그저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어머니, 그리고 그런 현장에서 긴급 구호를 펼치고 있는 한비야의 모습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동영상이 꺼지면서 무대가 밝아졌습니다. 동영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넨 한비야가 들어오고 있었는데요.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PPT 없이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90여분 동안 청중을 사로잡은 그녀의 3가지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릴게요.
여러분 머릿속에 세계지도를 떠올려 보세요. 어떤 나라들이 먼저 생각나시나요? 미국? 중국? 아마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선진국이나 모두들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멋진 관광명소와 휴양지가 있는 곳일 것입니다. 한비야는 "그 세계지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들어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한국을 베이스캠프로 하되, 우리의 사랑과 관심을 저 지도 밖으로 돌려 전 세계를 무대로 사는 것을 제안했는데요. "튀어봐야 지구 안이고 많아 봐야 70억 인구이니, 시원한 세상에서 즐겁고 자유롭게, 기왕이면 남 도와주면서 사는 것이죠."라며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더불어 정상을 올라가기 위한 전진기구이자 힘이 떨어지면 에너지를, 자신감이 떨어지면 자신감을 보충하는 보충기지인 튼튼한 베이스캠프의 중요성도 역설했는데요. 여기서 베이스캠프란 공부를 잘해서 취업 잘하는 곳이 아니라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진기지를 의미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국민이자 세계시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자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가슴 정중앙에 불화살을 쏠 겁니다. 부디 맞아주세요. 지금 맞은 불화살이 100도까지 끓어서 여러분의 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번째 강연을 시작하면서 한비야가 한 말인데요. 그러면서 15년 전 그녀가 맞은 불화살 이야기가 바로 이어졌습니다.
긴급구호 활동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6년간 오지여행을 하면서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천원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아이가 돈이 없어서 3초에 한 명씩 파리 목숨처럼 죽어나가는 것을 봤던 것이죠. 국제 홍보를 전공한 그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잘 알리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온 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인터뷰 질문에 긴급구호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얼마 후,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 팀장 및 홍보팀장을 제안 받았고, 마음을 결정하기에 앞서 소말리아와 케냐 국경에 위치한 현장을 직접 방문하게 되는데요. 현장에 도착 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풍토병으로 피부 곳곳에 피고름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솔직히 겁도 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한 케냐 의사를 만난 것이 그녀의 생각과 삶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왜 이런 오지에 와서 돈도 조금 받고 피고름 묻혀가며 일하고 있냐는 그녀의 질문에 그 케냐 의사는 "제가 나이로비(케냐의 수도)에 있었으면 잘 먹고 잘 살았겠죠. 그런데 제가 가진 재능과 기술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라니, 정말 멋있는 대답이지 않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답이 한비야가 맞은 불화살이었고, 월드비전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계기였습니다.
▲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불화살을 쏘기 위해 열띤 강연을 펼치고 있는 한비야
▲ 인명구조, ▲ 물을 비롯한 식량공급, ▲ 보건의료 및 피난처 제공, ▲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기 등 긴급구호 활동을 하다보면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고 밤낮으로 일을 하곤 한다고 합니다. 몇 날 며칠 일하다 보면 힘들긴 하지만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니까, 이 일이 내 피를 끓게 하니까 또다시 힘을 내어 하게 되는 것이라 말하는 한비야의 모습에서 빛이 나는 듯 했습니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학년이 높아서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나요? 한비야는 우리를 향해 인생을 축구라고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데요. 45살을 기준으로 전반전과 후반전을 나눴을 때 우리는 모두 인생의 전반전 중에서도 이제 막 20여분 밖에 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 전반전, ▲ 후반전, ▲ 연장전, ▲ 패자부활전까지! 아직 이렇게나 많이 남아 있는데 축구선수들이 전반전에 골이 많이 먹혔다고 지는 경기라 생각해서 돌아가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인생축구도 마찬가지로 후반전까지 가봐야 하는 것이죠. 지금 후반전을 뛰고 있는 한비야도 전반전에는 많은 골을 먹혔지만 현재 이 후반전 경기를 잘 싸우고 싶어 100% 몰두 중이고, 이기는 경기도 좋지만 멋있는 경기를 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중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말은 아프리카의 속담 중 하나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막 시작하려는데 주위 사람들이 응원은 못 해줄망정 "가족을 생각해라", "이제 와서 무얼 한다고 그러느냐" 등 사기를 꺾어 해보지도 못하고 접는 것을 흔히 보곤 하는데요.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모두가 응원하지는 않는다고 말이죠. 만약에 그런 말을 듣기 싫다면 '자기'라는 배를 항구에 묶어 놓으면 됩니다. 하지만 배는 항구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본질이니 나아간 그곳에서 거친 파도와 강한 바람을 만나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큰 바다를 만날 것이고 또 다시 풍랑이 일겠죠? 그렇지만 그것을 버티고 가서 반대편 항구에 닿았을 때, 우리가 더 크고 노련한 사람이 되어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우리 연세 학우들과 같은 20대가 실패 또는 낙오를 할까 두려워하면서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보탰습니다. 20대에 거치지 않으면 30대에는 더 무서워지게 될 것이고 평생 무서워하며 살 수는 없으니까 도전해보는 것이죠. 거쳐보면 생각보다 두렵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요. 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나요?
한비야는 훗날 그녀와 우리가 만나게 되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세요?"라고 물었을 때 서로에게서 "제 가슴이 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길 바란다는 말을 끝으로 강연을 끝맺었습니다.
제가 중, 고등학생이었을 즈음 한비야의 저서인 '그건 사랑이었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다른 책들도 재조명되고, 반기문이 UN사무총장으로 선출 되는 등 한창 세계화의 바람이 일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동력이 되어 글로벌행정학과로 진학해 국제개발 트랙을 공부하게 됐고요. 그래서인지 한비야의 강연이 제게는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강연 초반까지만 해도 1그램의 용기가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강연이 끝날 즈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것인데 99도까지 와서 1도가 모자라 못 끓게 되면 너무나 아깝듯이, 무언가를 하고 싶어 열심히 하다가 거의 다 되었는데 포기하려 한다면 너무나 안타깝잖아요. 그런 사람에게 '1그램의 용기를 보태주는 것'이 필요하고 또 마침내 이뤄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인문학적 생각을 하다 보니 사고의 폭이 넓어지는 기분이 들지 않나요? 외국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좋지만 이러한 인문리더십 강좌를 통해 마음의 소양까지 쌓을 수 있는 연세 학우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