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인생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헤매는 시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시기에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20대 청년들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성취해낸 사람들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이겨냈다는 이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 방황했던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비전을 이룬 한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신재진 선배를,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 의과대학 건물
신재진 선배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뇌인지과학과이면서 동시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소속으로, 김상정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현재 박사과정 5년 차로,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김상정 교수 밑에서 소뇌 관련 연구를 하다가, 3년 전 부터는 대뇌에 관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현재 대뇌에 관한 첫 논문이 완성 단계라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처럼 신경과학에 확고한 뜻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방황 끝에 이러한 비전을 잡은 것인데요. 방황의 시기가 꽤 길었다고 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그리고 휴학 초반까지도 그러한 시기가 이어졌다고 하는데요. 각각의 시기에, 방황을 했던 이유를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해 줬습니다.
고2 가을, 한꺼번에 닥친 어려움
그는 중·고등학교 재학 당시 학원을 다녀본 적도, 과외를 받아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혼자 스스로 많이 공부를 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는 신앙이 깊은 집안 분위기와, 그에 따른 부모님의 성격이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입시에 대해서 잘 모르세요. 그냥 신앙생활이랑 기도만 열심히 하시고... 저희 부모님이 목사라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평신도임에도 불구하고, 저희 집안에서는 그러한 신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부모님은 그냥 입시 이런 것 신경 쓰지 않고 신앙 안에서 저를 항상 믿어주셨다는 거죠. 그런 믿음 때문일지는 몰라도, 고등학교 1학년 때 까지는 공부를 꽤 잘했어요. 그리고 성실하기도 해서 매년 반장도 하고, 전교 부회장도 해보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무너지게 된 시기가 고등학교 2학년 때라고 하는데요. 여러 가지 어려움이 한꺼번에 닥친 것이 그 이유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성적이 갑자기 하락한 것인데요. 수학 수준이 갑자기 높아진 것과 함께, 학업과 신앙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한 가지에 집중을 못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심마저도 확고하지 않게 돼버렸다고 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당시 가정적으로 형편이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고, 세 번째로 진로적인 문제로 많이 고민을 했던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뻔도 했다고 하는데요.
이 상황을 벗어나는 데는 친구와 가족, 그리고 교회의 도움이 제일 컸다고 합니다. 초·중·고를 같이 나온 오랜 친구의 응원과 함께, 방황하는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랑으로 이끌어 주신 부모님, 그리고 교회 사람들의 보살핌 덕에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해요.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점수 등을 회복하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학교였던 연세대를 들어가는 것이 원래 목표였던 그는, 점수를 약간 낮추어 우리 캠퍼스의 생명과학기술학부에 입학하게 됩니다.
입학, 그리고 이미지 탈피를 위한 일탈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대학교에 와서 제대로 사춘기를 겪었다고 하는데요. 자격지심을 승화함과 동시에 그가 가지고 있던 성실함, 착함이란 이미지를 탈피해보고 싶은 마음에 일탈을 했다고 합니다.
"입학 후에, 대학 밖에서는 제 자격지심 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하고 거리감이 느껴져서 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근데 학교 안에서는 자유를 느끼고 아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이 안에서 뭔가 튀어 보이고 싶었나 봐요. 그것을 공부로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않고 스트레스도 풀 겸 노는 걸로 튀었던 거죠. '아, 이제 내 마음대로 해봐야겠다.' 당시엔 이 생각이 제일 컸어요. 안 해봤던 것을 다 해보자고, 나의 성실하고 착한 이미지를 이 기회에 한번 탈피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죠. 그래서 연애도 해보고, 술도 먹어보고, 땡땡이도 쳐보고 공부도 안하고... 당연히 성적은 안 좋았죠. D,F가 대다수였거든요. 그러다 살짝 정신을 차리고, 이런 성적을 다음 학기에도 받을 것 같아 일단 휴학 신청을 했어요."
휴학 초반, 안일함에 느슨해진 초심
그렇게 정신을 잡고 휴학을 했는데, 휴학 첫 학기에도 방황을 많이 했다고 해요. 그 원인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는데요. 아무래도 휴학을 하면 더 자유롭고, 얽매일 필요가 없다 보니 그랬다고 합니다.
"막 휴학할 때만 해도 장대한 목표를 가지고 꿈을 세웠는데, 막상 휴학하고 나니까 '조금 천천히 해도 되겠지.' 이런 생각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휴학을 할 거면 어차피 2년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우선 3개월을 놀자고 생각했는데, 이게 놀면 계속 놀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 서든어택 같은 FPS게임이 막 나오던 때였는데, 거기에 꽂혀서 아침 9시에 도서관이 아니라 PC방으로 출근을 했어요. 그러고는 새벽 2시나 되서야 나오고. 또 부모님한테는 도서관 간다고 거짓말하고 하루에 2만원 씩 받아서 썼죠.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미친 짓이었는데, 그 때는 또 그게 즐겁다고 계속 했었어요."
그렇게 계속 방황하는 중에도 그는 계속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그리고 신앙에서의 그의 정체성과 비전에 관해서 말입니다. 그러한 고민을 하던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를 그는 두 가지를 꼽는데요. 가족의 지속적인 믿음과 사랑, 그리고 뭔가 내 모습 같지 않다는 양심의 가책이 그것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때, '하나님이 내게 이런 삶을 살게 하려고 이 땅에 보내신 건가?'란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해요. 이러한 것들이 방황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것을 끊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다고 합니다. 그와 동시에 내게 주어진 이 장소에서 벗어나야 탈피가 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여행을 가자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여행 자금 모으기 -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여행 자금을 모으기 전에, 그는 그가 가장 잘하는 것에 대해 먼저 생각해봤다고 해요. 그 결과 영어를 꾸준히 잘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이용해서 영어 과외를 통해 여행 자금을 모으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성적이 대체로 안 좋았지만, 단 하나 영어과목만은 A+를 맞았어요.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은 저희 아버지 영향이 큰데, 이과생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엄청난 우위라는 말을 자주 하셨거든요. 그리고 학교도 제가 기독교 학교를 나오다보니, 그곳에 영어선생님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영어는 꾸준히 잘 했어요. 그래서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제가 자신 있던 영어 과목 과외를 시작했죠. 동시에 제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고요. 제게 아직까지 어떤 힘이 남아있다는 것을 시험해보고 싶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토익, 토플, 텝스를 다 땄어요. 그 때 토익은 거의 만점에 가까울 정도였고, 토플도 CBT 300점 만점에 273점, 그리고 텝스도 950점 정도를 받았어요. 그렇게 실력을 키우고 과외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죠."
여행의 끝에서 -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비전을 찾다
그렇게 번 돈으로 그는 세계 곳곳을 다녔다고 합니다. 미국에 가서 유명한 대학교들을 탐방하고, 방글라데시에 단기 선교를 다녀오기도 하는 등 여러 곳을 방문했다고 해요. 특히 여행 마지막에 가족들과 함께 했던 호주 여행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합니다. 가족들과 호주 사막을 동부에서 서부로 한 달 동안 횡단을 하면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안정을 많이 찾았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돌아오면서 비전을 찾고 싶다는 목적이 뚜렷해진 것이 그 여행이 인상 깊었던 이유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자신의 비전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고 해요.
"여행에서 돌아와서, 정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겼어요. 제 비전은 과연 무엇인가. 꿈 말고요. 꿈과 비전은 조금 다르다고 생각해요. 꿈은 제가 되고 싶은 것이고, 비전은 하나님이 저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라고 저는 믿거든요. 그 목적이 나의 성품과 잘 맞는지, 정말 내가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를 찾는 것이 제 목표였어요. 그래서 그것을 찾다 보니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에 저는 행복을 느끼고 있더라고요. 특히 제가 대학생 때 방황을 많이 했기 때문에, 청년들을 가르치는 게 좋았어요. 그런 경험들이 맞물려서, 교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 했어요. 또 하나는, 살아있는 생명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성경에 '하나님은 생명이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에 대해 연구하다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럼으로써 제가 이 땅에 온 목적, 진리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래서 살아있는 생명에 대해, 특히 신경과학에 대해 연구하자는 목적을 가졌어요. 우리의 영혼이 뇌에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복학 전 - 전공에 대해 준비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마지막 휴학 학기 때부터 그는 제대로 전공 준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전공 서적을 볼 때 기준을 세웠다고 하는데요. 세 가지로 수준을 나눠서 전공서적을 찾아봤다고 해요. 첫 번째로 하버드, 스탠포드 대학생들이 읽는 책들을 찾아봤고, 두 번째로 서울대 학생들이 읽는 책을, 그리고 세 번째로 연세대 신촌캠퍼스 학생들이 읽는 책을 찾아봤다고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독학을 해서 생물학과 2학년 수준까지의 책을 공부했다고 하는데요. 그것과 더불어서, 고등학교 때 놓친 수학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 중에 가장 쉬운 것이 그것을 그냥 안하고 넘겨버리는 건데, 저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훈련이라고 믿거든요.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제가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를 온 것도 제 인생의 큰 시간에서 보면 그냥 하나의 훈련인거죠. 그것을 어떻게 인정하게 되냐면, '아, 나를 여기에 보낸 사람이 내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통해서 해요. 그러니까 내가 공부를 이만큼 밖에 안 해서 여기 온 것은 맞지만, 공부를 안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던 것조차도 제 성장을 위해 하나님이 허락한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결국 인생의 목적은 성장에 있으니까요. 그 성장을 위해선 여러 관문을 넘어야겠죠. 그 중에 오늘 반드시 넘어야 하는 이 관문을 못 넘으면, 언젠가는 이것이 저에게 또 와서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때문에 저는 복학하기 전에 생물공부도 했지만, 제가 고등학교 때 못 넘어봤던 과목들을 더 늦기 전에 다시 한 번 공부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수학의 정석 시리즈를 다 사서 독학했죠. 고등학교 때 못 넘은 산을 그 때에서야 넘기 시작했어요. 뒤늦게 6개월 열심히 한 끝에 결국 수학도 정복을 했습니다."
그 후에 수능을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문을 넘어서고 싶기도 했고, 나중에 교수가 되어 여기서 성공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믿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곳에서 졸업을 하자고 마음을 먹고 복학을 했다고 합니다.
▲ 인터뷰 중인 신재진 선배의 모습
그렇게 돌아와서 공부를 열심히 함과 동시에, RA활동을 했다고 하는데요. 신입생들을 만나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지식을 나눠줌과 동시에, 그동안 잃었던 인간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3,4학년을 보내면서 2가지 목적을 가졌다고 하는데요. 첫 번째는 신앙 안에서 참된 비전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었다고 해요.
전문성 높이기 - 대학원을 준비하다
그래서 좀 더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대학원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신경과학에 전문성을 갖춘 곳이 그 당시에 많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서울대가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에 지원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 과가 대학원 내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과였다고 해요. 특히 뇌인지과학과는 거의 외국학교처럼 운영을 해서, 공인 언어가 영어였고 외국 교수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원을 한 이유는, 어차피 유학을 갈 건데 미리 글로벌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지원 자격이 매우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영어를 쓰는 만큼 공인영어점수가 매우 높아야 하고, 두 번째로 리더십과 관련해서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 서술해야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는 가지고 있던 토플, 텝스 점수를 기재하고, RA활동을 했던 경험을 서술했다고 해요. 그리고 세 번째로 학문적인 수준, 배경지식을 많이 본다고 하는데요. 이를 통해 하고자 하는 연구에서 어떠한 가설을 세우고 싶은지를 본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재진 선배도 지원서를 준비하느라 6개월가량이 걸렸다고 해요. 거의 논문 수준으로 작성을 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그는 기준을 세워서 작성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이 연구를 왜 해야 하는 것인가. 두 번째는 이것이 왜 중요한 것이며 무엇이 특별한가. 세 번째는 이것을 어떻게 진행할 것이며, 네 번째는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다섯 번째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인데, 이 연구를 통해 다음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다섯 가지가 제가 연구를 할 때 심사숙고하는 핵심이에요. 다른 활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또한 그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 2가지 더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제가 실력을 갖춘 후에 제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것을 조사를 많이 하는 것이에요. 사람은 상대방의 것을 믿기 전에, 가시적인 것을 먼저 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사람에게 먼저 나의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우선 나의 것을 노력을 해서 쌓아놔야 한단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쌓아놔도, 결국 공감이 안 되면 다 필요 없는 것이 되잖아요. 교수들도 마찬가지에요. 실력이 아무리 높아도, 교수가 원하는 분야의 실력이 아니라면 뽑지를 않겠죠. 그래서 저 같은 경우에는 이곳이 신경과학을 하는 연구실이니까, 지원을 하기 전에 그 연구실에서 나온 약 10년 동안의 논문들을 싹 다 훑었어요. 그런 것들을 읽으면, 여기서는 이런 연구를 했고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하겠구나까지 예측이 가능하거든요. 이러한 것들을 제 자기소개서와 이메일에 써서 공감을 얻었어요. 이런 방법으로 서류 접수를 해서 1차 통과를 했습니다."
면접 - 90점 인생에 도달하기까지
그렇게 서류 통과를 한 뒤에 면접을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 면접은 다른 면접들과 달리 더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학교가 외국식으로 운영이 되다보니, 면접도 외국식으로 진행을 한 것인데요. 세미나실 같은 곳에 외국 교수 4명과 국내 교수 4명이 빙 둘러앉아서 한 사람의 지원자에 대해 면접을 보는 방식이었다고 해요. 즉, 8대1의 면접을 통과해야했는데요. 그는 여기서도 자신만의 철학을 유지해서 면접을 보았다고 합니다. 앞으로 수많은 면접을 볼 후배들에게 그는 팁을 하나 남겨주었습니다.
"후배들이 면접에서 모든 질문에 대답하려는 부담감을 버렸으면 좋겠어요. 답을 다 알면, 그건 이미 여기를 졸업한 박사 수준이죠. 하지만 우리는 배우려고 들어온 것이잖아요. 그래서 교수들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는 없어요. 그 대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별해놓는 것이 필요해요. 그리고 아는 것은 확실히 알도록 해놔야 해요. 또한 이게 정말 중요한데,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면 안돼요. 연구자의 입장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다른 면접을 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섣불리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했다가는 호되게 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도 그에 대처하는 그만의 방법을 알려주었는데요.
"면접 때 제가 모르는 분야, 예를 들어 B에 대한 질문을 받았어요. 그 때 저는 '아...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고 '잘 모르지만, 그래도 이 A라는 분야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어요. 저는 A라는 분야에 대해 정말 완벽히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교수의 전문연구 분야였기 때문에요. 그래서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대신, 아예 아는 것을 밀고 가자고 생각했던 것이죠. 처음에는 질문을 했던 교수가 저를 완전히 어이없게 봤어요. 근데 이러한 대답이 쌓이면, 의외로 엄청난 포인트가 되거든요. 그래서 거기 있던 교수들에게 제가 계속 A를 강조했어요. 그랬더니 거기 있던 유명한 외국 교수가, 지금 제 담당 교수이신 김상정 교수님에게 '얘는 충성심이 있으니 무조건 뽑아야한다.' 이런 식으로 말을 했대요. 그렇게 면접을 보고 나왔는데, 붙겠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죠."
그렇게 그는 서류와 면접에서 모두 1등으로 합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원 내에서도 교수들과 선배들에게 주목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그는 80점 인생에서 벗어나 90점 인생에 도달한 것, 그리고 그동안의 관문을 돌파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낀 점이 가장 기뻤다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항상 해주신 말이 있어요. 재진이는 항상 80점 인생이다 이거죠. 제가 만약 여기서 80점이면 다른 곳에서도 80점일 수밖에 없다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이게 또 90점이라는 9부 능선을 올라가면 거기서부터는 또 떨어지지 않는 레벨이 있으니,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를 붙은 것이, 80점 인생에서 90점 인생으로 도약했다는 신호탄이 된 것이잖아요. 많이 헤맸지만 이제 원하던 상위권 인생에 진입을 했구나, 이제 한 단계씩 더 성장해가면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가장 기뻤어요. 그래서 엄청 울었어요."
대학원 생활 - 자신감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그렇게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대학원이 서울대 의대에 있다 보니, 대학원생들이 거의 다 의대 출신들이었다고 하는데요. 그것 때문에 자격지심을 겪을 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학교 때 이미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넘어설 수 있었다고 해요. 방황을 극복했던 경험과 함께, 1등으로 입학해 대학원 내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그 원동력이라고 합니다.
또한 성실함을 보여주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것이라고 믿었던 그는, 무조건 아침 8시에 출근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늦게 퇴근을 했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약 1년 정도 생활한 끝에, 교수의 신뢰를 얻게 되고 다른 선배나 후배들이 무시를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한 자신감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현재는 대학원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제가 그것을 넘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학부 때 그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에요. 저는 모든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유익하다고 믿거든요.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시간을 크게 두고 보면, 오늘 막 괴롭고 힘든 일들이 사실은 별거 아니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어려움을 잘 이겨내면 반발력이란 것이 생겨요.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자격지심이 생기고 그래도,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그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거기 빠지지 않고 더 열심히 생활을 했던 거죠. 그 결과로 지금은 2배 이상 더 성장해서 올라왔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교수님이 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재진이는 우리 연구실의 대들보다.' 이렇게 말을 하세요. 저에겐 기쁘기도 하고 과분하기도 하죠. 다른 의대 출신도 있는데. 아무튼 이런 식으로 극복을 해서 현재는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 후 신재진 선배는 서울대학교에서 벗어나 더 심도 있고 어려운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대전 카이스트 기초과학연구원(Institute for Basic Science, IBS)의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에서 제 2의 연구인생을 시작할 것이라고 하는데요. 불안하고 두려운 도전이지만, 자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여기고 기쁜 마음으로 파견을 갈 것이라고 합니다.
▲ 기초과학연구원 및 실험실 전경
마지막으로 그는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세 가지의 팁을 주었습니다. 뇌가 지배하는 삶이 아닌, 내가 지배하는 삶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방법론인데요. 이것을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했습니다.
"가장 먼저 첫 번째로, 자신을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잘 알고, 그것에 대해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인지를 다른 사람들이 바라는 내 모습에서 찾지 말고, 스스로 깨우쳤으면 해요. 어느 순간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 성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학생들이, 그 어떤 매개체와 다 멀어져서 자신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했으면 해요."
"그리고 두 번째로 그것을 알게 되면, 거기서 정말로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거기에 매달려 봤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것을 찾으려면, 다 해봐야 해요. 다 공부하고 뛰어들어보세요. 최소한 한 달은 파봐야 해요.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5가지 이렇게 있으면, 이번 달에는 A를 파봐야지 하고 A를 파보세요. 그리고 안 맞으면 다음 달에는 B를 파보세요. 이런 식으로 해보면, 적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5가지 중에서는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남들에게 기대서 알아보지 말고 스스로 해보세요. 특히, 성공서적 읽지 말고 상담하지 마세요. 그런 것들은, 정말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았을 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최단거리를 알려주는 첨가물일 뿐이에요. 저도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이 기사를 읽는 후배들도 제발 내 이야기만 듣고 그대로 따라하려하지 말고 여러분의 것을 먼저 찾았으면 해요. 그리고 제 이야기를 첨가물 정도로만 참고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내가 의지할 만한 대상 혹은 나를 감정적으로 안정시킬만한 것을 찾았으면 합니다. 저에게는 그게 신앙이었거든요. 여러분들 같은 경우에는 그것이 꼭 신앙이 아니더라도 가족이면 가족, 사랑이면 사랑, 나의 꿈이면 꿈. 그런 것들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만약에 꿈을 이러한 대상으로 삼는다면, 평생의 목적, 정점의 푯대를 세우세요. 그것이 내가 어디를 가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거든요. 단순히 내년 목표를 세우지 마세요. 그건 이루고 나면 허무해져요.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아까 말했던 정점의 푯대, 더 심각하게 말하면 평생 이루지 못할 것 같은 목적을 세워야 해요. 무한하게 샘솟듯 터져 나오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것들을 후배들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본문에는 담지 못했지만, 신재진 선배가 한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느 지위에 올라가면 그 지위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면 그것이 지위가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실력이 바뀌면 소속이 바뀐다는 것인데요. 단순히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고, 명문대에 들어가고 싶지만 어떻게 할지 몰라 헤매는 청년들이 꼭 들었으면 하는 말이었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방향성도 잡힌다는, 그 말을 이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상으로 신재진 선배의 성취스토리에 대한 기사를 마칩니다. 열심히 인터뷰에 응해주신 신재진 선배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