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 합격, 말만 들어도 벅찬 단어인데요. 어느 분야에서 가장 큰 노력을 해야 얻을 수 있다는 선두의 자리는 쉽게 주어지지도 않으며 소수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리입니다. 최고보다는 최선이라는 말이 존재하지만,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된다면 더욱 멋진 일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은 임상병리사 국가시험에 수석 합격해 같은 직종에 근무하고 있는 사정훈 동문을 만나보았습니다.
사정훈 동문은 현재 신촌 세브란스 진단 검사 의학과 혈액원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임상병리사라는 직업명이 낯설 학우분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렸습니다. 딱딱하고 막연했던 명칭과는 달리 병원에서 환자로 한 번쯤은 경험했을 업무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또 다른 반가움이었는데요.
“우선, 임상병리사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기사 중 한 분야에요. ▲의사, ▲한의사, ▲치과의, ▲조무사 등 총 8개의 직종 중 하나인 임상병리사는 사람에게서 유래된 모든 것으로 그들의 병을 판단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즉 혈액, 소변, 조직으로 병의 조기진단 및 진전 과정 예후, 병이 얼마나 나았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죠. 또한, 진단 기기 회사에 입사하여 병원에 들어가는 시약이나 기계를 제조하기 위해 임상실험의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는데요. 임상실험은 우리가 흔히 알 듯 쥐와 같은 포유류부터 시작해서 이 동물들이 약물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실험이에요.”
사정훈 동문은 임상병리사의 업무가 꽤나 일반인들에게 친숙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직업명이 낯선 이유를 ‘외적인 일’이 적기 때문이라고 꼽았습니다.
“임상병리사의 모습을 환자가 직접 보는 일은 조금 드물 텐데요. 제가 지금 근무하는 곳을 예시로 들어드릴게요. 의사가 육안으로 환자의 상태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임상병리사는 업무를 시작해요. 사전에 채취한 환자의 혈액으로 실에서 검사를 한 뒤 의사에게 소견을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외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일은 적은 편이라 낯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수석 합격이라는 타이틀이 빛나는 만큼 큰 시험을 준비하는 사정훈 동문 나름의 자세가 궁금했는데요. 그는 이에 대해 큰 시험의 종류를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잠깐의 필요함과 평생의 필요함, 이 큰 두 갈래는 내가 시험의 결과를 언제까지 안고 살아갈지 결정한다고 덧붙였는데요.
“토익시험과 국가시험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토익시험은 학부 중간, 기말과 마찬가지로 시험을 보고 나서 평생에 필수로 사용할 그런 시험이 아니잖아요. 시험장을 나오는 순간 난 더 이상 여기서 공부를 안 할 것이다. (웃음) 4년간 차근히 토익을 준비하기엔 같은 시간에 그보다 더 값진 경험이 많은데, 시험 하나에만 올인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단기간에 집중을 해서 극단적으로 외우고 말 그대로 패스하는 방식이 조금 더 맞는 길이었어요.”
“면허시험을 보는 전공과목은 그것과는 반대로 롱런하는 과정이에요. 1·2학년 때 내가 왜 배우지 싶었던 과목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조금씩 기억에서 끄집어 내게 되니깐요. 학부 초기 때 배운 과목들은 아주 약간의 복습이어도 고학년에 가서 이해하는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가지를 쳐 나간다는 개념으로 연계 시키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이렇게 사정훈 동문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까지 여러 가지 목표와 계기가 있었을 텐데요. 어떤 경험들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살짝 들어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자연과학계열에 흥미가 많았던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같은 다큐멘터리 채널을 보는 것이 취미였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순탄하게 제 길을 찾게 된 케이스는 아닌 거 같아요. 과학 특성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본격적인 이과생의 길을 걷기 시작한 저는 전기공학 쪽 일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전기회로에 발을 들였다가 제 적성이 아니라는 것을 비교적 빨리 깨달았어요. (웃음) 그 뒤에 보건계열로 전향해 치의학을 준비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고, 약대를 생각하던 기간에도 약전이 폐지된다는 뉴스가 돌아 약사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 꿈을 접었죠. 그러다 고3 때 수시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면서 친구의 자소서를 보다 진로를 찾게 되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임상병리사라는 과를 몰랐는데요. 친구에게 설명을 듣고 친구의 입장으로 자소서를 보다 보니 점점 동화가 되는 거예요! 그때부터 입학사정관제 하던 것도 포기하고 정시로만 입학을 준비했죠.”
덧붙여, 지금 하는 공부가 적성에 맞는지 고민하거나 더 나은 곳을 갈 수 있는데 현재에서 버티고 있는 것 아닐까 의문이 들 때는 관련 인턴 경험을 살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저는 군대를 주특기인 임상병리병에 지원하면서 나름의 인턴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전공을 살리면서 군 생활 한거죠. 물론 병원의 업무가 심층적이긴 하지만, 군대 병원에서 임상병리병이 하는 업무와 현장에서 임상병리사가 하는 업무는 거의 비슷하니깐 2년간의 실습 경험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걸 통해서 첫 직장의 느낌을 경험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 같아요. ‘평생 근무해도 이 일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길을 계속 걸어온 계기도 되었고요.”
기억에 남는 학부시절 이야기
사정훈 동문에게 기억에 남는 학부 시절 이야기를 묻자, 학부 시절 들었던 필수교양 강의와 학부 1학년 때 참여했던 인재개발원 프로그램에 관한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필수교양으로 들었던 인간과 생명이 기억에 남는 거 같아요. 인문학이랑 자연과학이 섞인 느낌? 문과와 이과 서로 간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저는 미토콘드리아와 사람의 존엄성을 연결해서 발표를 했었는데. (웃음) 자연과학계열을 공부하면서 철학과 통계학을 상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그런 부분들을 조금이나마 보충해준 교양 수업이었어요.”
“연세웹진이 인재개발원 소속이니 인개원에서 1학년 때 했던 CPD라는 프로그램 생각이 나네요. 저학년과 고학년을 나눈 다음 취업 관련한 선생님 한 분을 모셔서 서로의 진로를 말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계획을 첨삭 받는 수업이었는데, 수료증을 주고 산업과 직무역량의 이해가 패스 되는 수업이라 들었던 거로 기억해요. (웃음) 이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제가 1학년 때 고학년 반에 지원해서 4학년 선배를 보게 되었고, 그때 소위 말해 충격요법이란 걸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보통 1학년 때 열심히 놀고 차차 공부를 시작하라는 조언이 많잖아요? 저는 1학년 때 어찌 보면 암울하게만 보였던 4학년의 모습을 보면서 그때부터 ‘열심히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 같아요. 성공한 사람의 사례만 보면 안일해질 수 있는데 반대로 정말 현실적인 사례를 경험하면서 오히려 다짐이 된 케이스죠. 정말 현실적인 ‘이건 하면 안 돼’를 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좋은 취미를 가지는 것보다 나쁜 취미 버리는 게 더 쉽다는 말이 있잖아요.“
마지막 질문에 대해 사정훈 동문은 후배들에게 현실적인 교육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말과 자신이 공부하는 분야의 최근 소식을 꾸준히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저와 같은 합격자 친구들이 매년 나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앞에 말은 저의 소망이고요. 후배들이 교육 중심적인 바탕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장에 나가 필요할 국가시험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현재 보건계열 학부는 새로운 연구가 논문에 실려도 10년 이상은 되어야지 강의에 포함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야 처음 관련 지식을 배우는 학부생들에게 오랜 기간 학회에서 인정을 받고 정확한 정보로 다듬어진 지식을 가르칠 수 있으니깐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학교 교육이 최근의 연구에서 10년 이상 떨어져 있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격차를 최신 의료기술이 모두 모인 병원 근무를 하면서 크게 느꼈어요. 그래서 전하고 싶은 말은 정말로 내가 관심이 있고, 오랜 기간 이어나가고 싶은 직업이라면, 학부 수업뿐만 아니라 현재 그 분야가 어느 정도 발전하고 연구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1등, 수석, 최우수,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꿈이지만 현실에서 그것을 이뤄낸 사람은 많지 않은데요. 진로와 취업에 관해 많은 고민이 있으실 학우 여러분들이 다양한 분야를 탐색하고 곰곰이 되돌아볼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전공을 선택해 그곳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도 오랫동안 인정받아온 가치인데요. 저는 만약 두 가지 가치 중 한 가지를 먼저 선택한다면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는 노력을 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취미를 가지는 것보다 나쁜 취미 버리는 게 더 쉽다.“라는 사정훈 동문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남은 불필요한 고민과 습관을 지워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조금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제보다 나은 나의 모습을 꿈꿔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준 사정훈 동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