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기가 있어서 방문할 예정입니다, 지금 어디시죠?”
글로벌 챌린저 최종합격 발표날인지라 모르는 전화번호로 걸려온 전화에 유독 민감했던 6월의 그날, 기대감에 받아 들었던 전화가 등기우편 안내라니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나중에 집으로 오면 될 것이지, 뭘 굳이 이까지 가지고 온다는 거지?’ 불만 반 의아함 반으로 건물 로비에 나서는 찰나, 왠 카메라가 앞을 막아 선다. 그리고 나를 향해 내미는 빨간 족자. 이건
또 뭔가 싶어 주섬주섬 족자를 풀어 안을 들여다보는데, 오 마이 갓.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와중에서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던 네 글자, 합 격 증 서. 글로벌 챌린저는 역시 시작부터 남달랐다. 세상에 어떤 공모전이 이렇게 드라마틱한 합격발표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시작된 글로벌 챌린저는 끊임없이 주어지는 크고 작은 미션들과 함께 팀원 모두의 삶 속에 들어와 자리잡았다. 1학기 기말고사 기간과 겹쳤던 각종 서류마감, 계절학기 도중에 다녀온 3박4일간의 교육 덕분인지 글로벌챌린저라는 이름과 팀명’열광’이 학교와 전공보다도 익숙한 기분마저 들었다. 해외탐방을 위해 국내 전문가들을 만나거나 인터뷰 스케줄을 거듭 확인하는 사이 7월 한 달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막연하기만 했던 해외 탐방의 무게도 서서히 커져갔다. 우리 팀은 자율선택형 과제인 인터넷 중계1)까지 신청해둔터라 부담감이 더했다. 하지만 인터넷중계야말로 탐방을 더욱 알차고 의미 있게 만드는 일이라 믿었기에 기관탐방만큼이나 공을 들여 꼼꼼하게 준비를 마무리해 나갔다.
그렇게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리고 대망의 출발 3일전, 마지막으로 사무국을 방문해 항공권과 탐방비 수령까지 마쳤다. 이제 정말 떠나는구나 싶어 가슴이 떨려오던 그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다시 한번 의지를 다졌다. 자 그럼 한번 신나게 다녀와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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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중계 : 챌린저들의 탐방을 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한 블로그 형태의 실시간 탐방기. 사전 신청을 통해 중계팀이 선정되며, 선정 된 팀은 각 팀 별 게시판에 동영상을 포함한 탐방에피소드를 업로드 할 수 있다. 중계 내용은 http://www.lovegen.co.kr에서 확인 가능하다. |





8월10일은 열광팀의 첫 번째 인터뷰와 첫 인터넷중계 미션 촬영이 있는 날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첫 인터뷰의 압박감은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긴장감에 한줄기 웃음기마저 사라진 얼굴로 찾아갔던 우리의 첫 인터뷰 기관은 디자인포럼 핀란드. (이곳은 핀란드의 디자인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반정부 기구이다.) 우리를 맞이하는 디자인 포럼의 CEO 미코 칼하마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에 다시 한번 주눅이 든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을 대표해서 지구 반 바퀴를 날아 온 글로벌 챌린저가 아니었던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는 성공적이었고, 핀란드의 디자인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워 낸 디자인포럼핀란드만의 노하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디자인 포럼을 나서는 우리는 꽤나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첫 탐방 통해 낙후된 한국 간판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방법과 더불어 앞으로의 인터뷰에 대한 자신감까지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2주간의 탐방기간 동안 우리의 모든 일정은 무척 순조로웠다. 기분 좋게 끝난 첫 인터뷰가 바로 그 성공적인 탐방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이제 또 하나의 과제, 인터넷중계 촬영을 할 차례이다. 인터넷 중계는 각 팀의 성향에 따라서 그 형태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팀은 여행 팁이 가득한 정보 전달식 중계를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팀은 보는 내내 빵빵 터지는 개그중심의 중계를 하기도 한다. 우리 팀의 경우 재미와 볼거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보자는 생각으로 각 도시 별 특색을 살린 미션을 미리 기획했다. 헬싱키에서의 미션은 이름하여 - 디자인디스트릭트2) 간판 꼴라주. 헬싱키 중심가의 디자인디스트릭트를 돌아다니며 ‘LG Global Challenger 2010’의 스물 두 글자를 하나씩 사진으로 찍어서 모으는 것이다. 미션에 긴장감과 흥미를 더하기 위해 여성팀과 남성팀, 2:2로 팀을 나누고 제한시간도 정했다. “준비하시고~ 출발!” 그렇게 완성된 꼴라주는 바로 이런 모습이다.

LG global challenger 2010! ♥
헬싱키의 대표적인 번화가에 있는 간판이 모여 만들어낸 LG 글로벌챌린저 꼴라주를 처음 완성하고서 우리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관광(배경), 챌린저(내용), 탐방주제(간판)의 특색이 완벽하게 녹아 들어있는 삼위일체 미션이 아닌가! (이쯤 되면 눈치채신 분이 있겠지만 열광팀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바로 자화자찬임을 고백한다)
유럽에서 보낸 2주간 여러 번 느낀 사실이지만, 챌린저 탐방은 팀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우리팀의 경우 인터넷중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 낸 경우이다. 방문하는 도시마다 수행했던 다양한 프로그램의 인터넷중계용 미션덕분에 자칫 평범한 여행이 되었을지도 모를 탐방기간이 평생 잊지 못할 우리만의 추억거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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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디스트릭트(Helsinki Design District): 열광팀의 첫 번째 탐방기관인 디자인포럼핀란드의 주관으로, 헬싱키 시내의 우수 디자인 샵들을 지정해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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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팀의 인터넷중계 미션 중 백미를 꼽으라면 스톡홀름에서 수행했던 ? 스톡홀름 부르마블게임을 선택하고 싶다. 미션들을 기획하며 마주한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풍경과 그림을 현장감 넘치게 전달 할 것인가?’였는데, 고심 끝에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어린 시절 즐겨했던 부르마블게임이었다. 스톡홀름 부르마블 미션은 우리가 직접 부르마블의 말이 되어 시내를 돌아다니는 장면을 촬영해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1. 스톡홀름 각지에 흩어져있는 관광지를 이어놓은 게임지도를 만든다.
2. 두 팀으로 나누어 각 지점을 돌아다니며 장소마다 지정 된 작은 미션들을 수행한다.
3. 동전을 던져 몇 칸을 전진할지 결정한다. (앞면 한 칸, 뒷면 두 칸)
4. 게임 종료까지 더 많은 개수의 미션을 수행한 팀이 승자이다.
5. 패한 팀은 벌칙을 수행한다.

게임의 기본이 되는 지도는 주요 관광지 중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 내의 범위에서 지정했고, 우리는 그 곳들을 직접 걸어 다니며 아름다운 스톡홀름을 만끽했다. 축제가 열리는 광장에서 간식 사먹기, 음악박물관에서 공연해보기, 구 시가지에서 커피 마시며 한국으로 엽서쓰기 등의 세부 미션들은 바쁜 탐방와중에 놓치고 지나갈법한 작은 여유를 선사했다. 특히 엽서쓰기 미션을 했던 카페 옆 광장에서 울려 퍼지던 거리 악사들의 아름다운 노래, 그 잔잔한 울림이 주는 감동은 탐방 기간 중의 짧은 여유이기에 더욱 크게 느껴졌다.



감동을 뒤로하고 패배자를 위한 벌칙의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가 준비한 벌칙은 은하철도999의 메텔 코스프레로 시내활보하기. 사실 우리 팀원들은 이 벌칙에 쓰일 노끈 머리카락을 만드느라 아침부터 분주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누가 쓰게 될지 모를 그 머리카락을 만들며 보낸 시간도 분명 색다른 추억거리이다. (제법 부피가 큰 너랑 노끈뭉치를 스톡홀름까지 가져오는데도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결론적으로 스톡홀름 부르마블은 성공, 대성공이었다! 팀원 네 명 모두가(심지어 촬영 차 게임을 함께했던 LGCC의 두분 피디님들 역시도) 이번 탐방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부르마블 게임을 꼽는다. 처음 목표였던 중계영상도 재미있게 잘 나왔지만 우선 수행하는 우리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진정한 의미의 성공미션으로 생각된다. 여섯 명이 똑 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에나 나올법한 부르마블게임의 말이 되어 보거나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어설픈 코스프레로 시내를 누벼보는 것. 인터넷중계가 아니라면, 혹은 글로벌 챌린저가 아니라면 다시는 경험하기 어려운 일들이 아닐까? ? 사실 약간의 대범함과 부지런함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최고의 경험이 될 테니 소중한 사람들과 꼭 한번 시도해보시길 추천한다.

이처럼 물 흐르듯 순탄했던 열광팀의 탐방에도 하나의 난관이 있었으니. 오로지 불어로만 가능하다는 파리시청과의 인터뷰 문제였다. 영어 인터뷰도 쉽지 않은 우리에게 불어인터뷰라니. 기관을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강력한 간판규제와 잘 정돈 된 거리 간판으로 유명한 파리의 시청은 이번 탐방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가 찾아낸 해결책은 ‘인맥동원’이었다. 하늘이 도왔던지 불어에 능통한 한 지인이 우리의 탐방기간과 딱 겹쳐 파리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급히 도움을 청했다. 그렇게 알게 된 ‘대니’는 팀의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의 도움으로 파리시청과의 구체적인 약속도 더욱 쉬게 잡을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익숙하지 않은 파리에서의 만남을 위해 한국에서 몇 번의 만남을 갖고 약속을 정한 뒤 우리가 먼저 유럽으로 떠났다. 그리고 시청과의 인터뷰 이틀 전, 갑자기 그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었다. 문자에도 답장이 없다. ‘오 이러지마 제발..’
충격에 빠진 것도 잠시, 우리는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팀원인 현상이가 웹을 통해 알고 있는 프랑스인 친구가 물망에 올랐다. 우리의 조심스러운 부탁을 혼쾌히 수락해 준 그녀의 이름은 ‘나디아’. 만화영화에서 많이 보던 이름이라 정겹기까지 하다. 이른 아침 미팅에 분주했을 텐데도 예쁘게 차려 입고 나와준 그녀의 능수능란한 불어 덕분에 인터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불어와 영어를 거쳐 한국어까지 2중의 통역을 거치는 번거로움에도 최고의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녀 덕분이다.


이후로도 나디아와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나디아는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함께 몽마르뜨언덕에 오르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파리지엔과 함께하는 파리 산책이라니, 기대하지 않았던 또 하나의 특별한 추억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우리는 탐방을 마무리하는 우리만의 호텔 파티에 그녀를 초대했다. 한국과 한국문화를 사랑해 마지않는 나디아와 그녀의 친구 시실리아는 우리의 파티를 더욱 유쾌하게 빛내주었다. (그녀들이 우리나라의 대중가요와 아이돌의 댄스를 우리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한류는 유튜브를 타고 파리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우정은 비록 웹을 통해서지만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함께 찍은 사진들을 올린 시실리아의 페이스북 사진폴더 이름은 ‘Korean Chinguship’이다. 칭구쉽, 한국어 ‘친구’와 영어 ‘friendship’의 합성어인 이 생소한 단어가 퍽 듣기 좋다. 세계로 나아가 한국을 알리고 새로운 것을 배워오는 글로벌 챌린저가 만든 친구관계에도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 아닌가.

8월말에 탐방을 마치고 보고서와 최종 PT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새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올 한 해를 돌이켜보면 우리는 참 많은 것을 얻었다. 빠른 기획력과 적극적인 실행력, 어지간한 문제에는 끄덕하지 않을 강심장과 위기 대처능력, 조금 더 편안해진 영어 회화와 새롭게 만난 수많은 사람들, 한 두 마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경험들.. 이 모든 것들 덕분에 우리는 성큼 성장 할 수 있었다. 해외여행과 입사기회에 눈이 멀어 시작했던 글로벌 챌린저인데, 그보다도 더 큰 것들을 잔뜩 받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선물은 이제는 한 가족 같은 우리팀원들이다. 눈빛만 봐도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세 사람을 얻는다는 것. 이보다도 큰 행운이 또 있을까. 우리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기에 LG 글로벌챌린저라는 이름이 한결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글로벌 챌린저는 기수제로 운영된다. ‘2010년 글로벌 챌린저 수상자’로 끝나는 것이 아닌 ‘글로벌 챌린저 16기’로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곧 11월에 있을 시상식이 끝나면 우리기수의 모든 일정은 마무리 되지만 챌린저16기로서의 삶은 이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일년간 우리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우리의 새로운 삶을 향한 발걸음을 더욱 더 빛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